나 여호와가 말했으니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에스겔 17:22~24

by 황쌤

오늘의 말씀(에스겔 17:22~24, 쉬운성경)

22 나 주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어린 가지 하나를 꺾어다가 심겠다. 나무 꼭대기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큰 산 위에 심겠다. 23 내가 그 가지를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심으면, 그 가지가 무성해지고 많은 열매를 맺어 큰 백향목이 될 것이다. 온갖 새들이 그 나무에 둥지를 틀고 나뭇가지 사이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 것이다. 24 그 때에 내가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고, 푸른 나무는 마르게 하고, 마른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겠다. 나 여호와가 말했으니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은 비유로 자주 말한다. 오늘 본문은 ‘나무’ 비유다. 이 비유가 가리키는 것은 ‘역사’다. 인간은 저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즉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누가 진행하는지와 관련된 생각 말이다. 어떤 역사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결정된다. 여러 가지 역사관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기독교적 역사관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과 비교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역사의 방향 : 약속의 성취


하나님이 ‘연한 가지’를 높은 산 위에 심으신다. 그 가지는 ‘큰 백향목’으로 자란다. 온갖 새가 백향목을 ‘보금자리’로 삼아 살아간다. 보잘것없어 보였던 작은 가지가 다른 생명까지 품어주는 큰 나무가 된 것이다. 여기서 ‘연한 가지’는 예수를 상징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비유로 예수의 등장을 약속한 것이다. 예수의 생애를 짧게 들여다보자. 그는 베들레헴 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정체성이 무색할 만큼 볼품없이 탄생하여, 평범한 목수로 자랐다. 그러나 그는 눈먼 자를 고치고,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며, 적은 빵과 물고기로 수많은 사람을 먹였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고,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화목 제물로 바쳤다. 예수는 ‘연한 가지’로 이 땅에 왔으나, ‘큰 백향목’이 되어 길 잃은 생명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기독교적 역사관은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시며, 역사가 그 방향으로 흐른다고 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약속을 저버릴지언정 하나님은 반드시 지키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다르게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크리스천에게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역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곳으로 흐른다!’


역사의 주체 : 여호와의 절대 주권


그렇다면, 역사를 쥐고 움직이는 존재가 누구인가? 당연히 하나님이다. 그러나 천지를 말씀의 지혜로 창조했다는 창조주가 역사를 이끈다고 하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고, 푸른 나무는 마르게 하고, 마른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여호와’를 당최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이 온전히 선하다면, 왜 악한 일이 일어나는지 불만이 생기기도 한다. 사실, 다수의 사람이 이런 이유로 이 세상에는 신이란 없노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묻는다. 만약 인간을 초월하는 지성을 가진 창조주가 존재한다면, 피조물이 그가 하는 일을 다 납득할 수 있겠는가? 피조물이 다 납득할 수 있는 일만 하는 창조주라면, 진정한 창조주라고 할 수 있겠는가?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리면, 그리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오직 그 물이 땅을 적셔, 그것으로 식물이 싹이 터 사람들의 먹을 양식으로 자라난다. 11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러하다. 내 말은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내 뜻을 이룬 뒤에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다한 뒤에야 내게로 돌아온다.” - 이사야 55:8-11, 쉬운성경


그렇다. 하나님은 인간보다 높은 생각으로 인간과 다른 길을 떠올리시고, 이를 이루시는 분이다. 그러니 인간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폭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계산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일하고 계시는 여호와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여호와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교적 역사관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했으니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의 결단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 우리가 겪는 일상은 크고 작은 고통으로 채워져 있다. 감사를 잃기 참 쉬운 나날이다. 그럼에도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다. 그 역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지만 반드시 선한 결과로 나아간다. 그 역사의 주체가 거룩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번 한 주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깊이 묵상하자. 그리하여 열 번 불만할 일을 아홉 번만 불만해 보자. 한 번만 감사할 일을 두 번 감사해 보자.


· 참고 : <생명의 삶>(두란노)을 기준으로 드리는 가정예배입니다. <생명의 삶>을 함께 사용하시거나, 아래 링크를 같이 이용하시면 더욱 풍성한 나눔을 할 수 있습니다.

· 바로 가기 링크 : https://www.duranno.com/qt/view/family_worship.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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