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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Nov 28. 2023

그냥 그렇게 보냅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어쩌면 끝이 뻔한 이야기 :: 첫 번째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출근할 준비를 마친 뒤, 꽤나 이른 시간부터 복잡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아침 9시부터 11시 사이, 자율 출퇴근제를 시행하는 회사이지만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나만의 시간을 갖는게 루틴으로 자리잡았다. 아무도 없는 회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켜고 자리에 앉았다. 한파가 불어닥친 오늘은 유독 사무실 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매월 25일은 월급 날이다. 그러나 벌써 4개월 째, 4번의 '입금 알람'이 울려야 할 휴대폰은 조용하기만 하다. 회사에 출근하고 있지만, 명확한 업무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임금 체불 회사에 재직중이다.


지난 주, 회사에선 임금체불 금로자 생계비 융자라는 제도가 있으니 정말 생활이 어려우면 지원해주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점심식사 도중 나온 이야기에, 직장동료 한 분은 얼굴이 붉어진 채 격양된 목소리를 내셨다. 월급도 받지 못하는데 빚을 내라니. 끝까지 월급을 받지 못해 대출금을 해결하지 못하거나, 이자에 대한 책임을 회사에서 지겠다는 명확한 보증도 없이 무책임한 말만 오가는 상황에 나는 생계비 대출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왜 아직도 그러고 있어? 빨리 노동부에 신고하고 이직해버려."


주변에서 들려오는 공통된 말이다. 나 역시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주변 지인이나 친구가 있었다면 서스름 없이 했을 말. 월급도 밀리고, 4대 보험료 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회사 퇴사해버리고, 노동부에 신고하면 그만인 것을 왜 그러고 있는지. 끝이 뻔한 상황에 대해 왜 미련하고 안일하게 바라만보고 있는지, 스스로가 답답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왜 아직도 그러고 있냐는 물음에 "조금만 더 버텨보려고." 라는 대답만 기계적으로 내뱉을 뿐이다. 주변에 빌린 돈은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밥은 모래알 처럼 깔깔하게 넘어간다. TV나 유튜브에서 나오는 웃긴 상황에 실소를 내뱉지만, 마음 한 켠에 커다랗게 난 상처가 따끔거리는건 도무지 나아지지가 않는다.




매너리즘 (mannerism)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일.


나는 심각할 정도로 깊게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것 같다. 엄습해 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대처해 나아가야 할지, 퇴사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일 조차 귀찮게 여겨진다. 중요하게 여겼던 메타인지는 커녕 목표나 열정, 의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변화라고는 1도 없는 하루를 보낸다. 집↔회사 출퇴근 반복, 밀리는 월급, 그저 그렇게 무기력 하게 보내는 주말, 플레이 리스트에 있는 음악들을 순차적으로 듣는 일까지.


심연에서 오랜 잠수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너무나도 어둡고 깊어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는 막막함에 숨이 막혀오는 것 같다. 이제는 슬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래 전부터 시작하려고 마음만 먹었던 글을 써내려 가기로 했다. 2023년 12월, 현재 회사에서 재직한지 2년차가 되는 달이다. 앞으로 내가 쓰는 글의 주제가 퇴사와 함께 노동부 신고, 어쩌면 소송까지 가버릴 이야기로 이어지게 될지, 예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나 밀린 월급이 해결되고 퇴직금까지 깔끔하게 받고 더 나은 환경의 회사로 이직하게 되는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 내심 좋은 일들로 가득 채운 글들로 채워지면 좋겠건만.


연말도 되었겠다, 묵혀만 두기엔 썩어 문드러지거나 스스로 주저 내려앉을지 몰라 지나간 일들에 대한 회고와 앞으로 나아 갈 길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 보려 한다. 글쓰기를 계기로 차츰차츰 의욕을 되찾고, 목표를 세워 나아가는 일상을 되찾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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