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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Nov 30. 2023

다가오는 연말, 나 홀로 회고

어쩌면 끝이 뻔한 이야기 :: 세 번째

2023년의 끝이 보인다. 코끝이 시린 날씨와 함께 분위기 좋은 카페나 음식점에선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벌써 다음 주면 12월이 시작된다. 지난 11개월을 되돌아보며 내년엔 달라지리라 다짐을 하기도 하고, 새롭게 맞이할 내년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달. 송년회 때문인지, 연말 모임이 잦아진 덕분인지 가끔 출근길 지하철에서 가끔 술냄새를 가득 안은 사람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당장 어제 있던 일도 잊어버리고 있는터라, 올 한 해에 대해 작게나마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신사옥, 신규 프로젝트, 직무 변경


신사옥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2021년 중순쯤으로 잠시 돌아가야 한다. 당시 회사는 안정적이었고, 신규 프로젝트를 위해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등 총 5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내 나이와 1~2살 정도 차이가 나거나 동갑인 비슷한 연령대의 사원들이었다. 신입사원 채용 후, 회사의 분위기는 정말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마가지 못해 하극상+비극의 결말로 끝나버렸지만..)


2021년 송별회 겸 연말파티를 진행하며, 2022년부터 신사옥으로 출근하라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약 4층 규모의 꽤나 큰 건물. 우리 회사만 쓰는 단독 신사옥이었기에 편안하고, 쾌적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수도 꽤나 늘어나 있었고, 탕비실에 과자와 음료가 즐비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사원급 이외의 직급들의 월급이 한 두 달씩 밀려있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던 날, 정말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멘토이자 나의 사수였던 수석님께선, 차마 이곳에 적어 내려가지 못하는 사유로 나에게 조용히 퇴사 소식을 알리셨다. 그렇게 한 두 명씩 회사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심난한 분위기 속에 회사에선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콘텐츠 마케팅을 맡고 있던 난, 어떤 아티클을 통해 알게 된 UX 분야(정확하게는 UX Writer)에 흥미가 생기고 있던 시기였다. 콘텐츠 마케팅 직무에선 당장에 급하게 처리할 업무가 없었고, 주 당 2~3건씩 발행하고 있던 아티클은 기존 프로젝트 중단과 함께 멈춰버렸다. 대부분의 업무가 사업계획서나 IR 자료 텍스트 가공과 디자인이었기에 한참 무료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전사 미팅을 통해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나는 곧장 팀장님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저, 직무를 변경해보려고 합니다.'


팀장님은 내가 변경하고자 하는 직무에 대한 설명과 함께 개발팀에 UX를 담당하는 인원이 없어 고민이었다며 마침 잘 됐다는 말을 해주셨다. 당장에 UX Writing을 하기엔 UX와 관련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어려움이 있었고, 팀장님은 UX 기획 쪽부터 천천히 시작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어쩌다 UX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 지속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시도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KPT 회고법을 이용해 적어 내려갔다. 올해 초, 나는 그렇게 새로운 직무를 맡게 되었다. (UI 디자인까지 맡게 될 줄 꿈에도 모른 채)




회사 특성상 대외비가 많아 신규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하게 써 내려갈 수 없지만, UX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만큼 적어도 프로젝트에 해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UI/UX 디자이너의 퇴사로 인해 Figma로 UI를 그리며 컴포넌트에 대한 기초 용어부터, UX 심리학과 법칙 등을 공부하며 새로 습득한 지식을 프로젝트에 녹여내보려 했다. 사실 서비스를 보고 있자면 UX부터 라이팅, UI 디자인까지 어느 것 하나 썩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다. 가능하다면 싹 다 뜯어내 고쳐버리거나, 브랜드 컬러부터 레이아웃까지 다시 작업하고 싶을 정도이니... 현재 문제의 신규 프로젝트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정말 느리고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쌓여있는 백로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손이 닿지 않아 청소도 하지 못하는 구석탱이의 먼지 같다.


올해 회사는 신사옥에서 다시 이전에 사용했던 사무실로 되돌아간다는 소식을 알렸다. 적어진 사람들의 숫자에, 너무 과한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좋은 소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말이 지난 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과를 나누며 담소도 나누고, 야근을 할 땐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던 신사옥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내심, 의욕을 갖고 시작했던 서비스조차 허무하게 막을 내릴까, 겁이 난다.



 



예상치 못한 한 달간의 유급휴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말, 월급이 제대로 밀리기 시작했다. 미적지근하게 이어지던 업무와 함께 지금까지 이어져온 침묵은 그때부터였다. 월급이 밀린다는 소식은 여유 없이 한 달치 급여로 생계를 이어가던 나에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줬다. 당장에 나가야 하는 카드 값, 한 달 동안 출퇴근 한 체벌인냥 결제될 교통비, 다음 달의 내가 갚겠지 하고 열심히 쓴 시발비용(火-費用) 등.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7월 급여도 체불되어 있던 직원들은 누가 봐도 멘탈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 중 한 명의 사원이 인사 담당자와의 면담을 통해 '몸이라도 편하자.' 라는 차원에서 재택근무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고 하셨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서 밀린 월급이 들어올까 싶었지만, 내심 교통비라도 아낄 수 있으니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조금은 심난한 분위기 속에 Slack 메시지가 떴다.




'여러 업무로 노고가 많이 쌓였던 여름, 리프레시 휴가(유급)를 실시합니다.'




5일간의 여름휴가였다. '근무'가 아닌 '휴가'인 데다, '유급' 이라니.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편하게 쉬다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해결되어 있으리라 굳게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유급휴가의 기간은 예상치 못하게 길어졌다. 첫 일주일의 유급휴가가 끝나갈 때쯤, 유급휴가를 한 주 더 연장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다시 또 일주일이 흐른 뒤, 유급 휴가 연장 메시지를 저녁 늦은 시간에 받았다. 총 4번의 유급휴가 연장 메시지를 받았을 땐 9월 추석 연휴였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라는 현수막에 '안 즐거워.' 라는 말을 나지막이 읊을 수밖에 없었다.


9월 말까지 이어진 유급 휴가 이후, 드디어 출근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밀린 월급이 해결되고, 정상화가 되었기 때문에 출근을 하라는 연락을 했으리라. 내심 기대를 안고 출근을 했던 것 같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밀린 월급은 들어오지 않았다. 긴 유급휴가와 연휴를 보낸 사람들의 얼굴에선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진척 없이 머물러 있는 프로젝트, 출근은 했지만 당장 처리할 업무가 없는 상황. 답답한 마음에 '업무 정상화'의 기준에 대해 팀장님을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내 속을 뻥-! 뚫어줄 만한 명쾌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2023년은 다사다난 그 자체였다. 새로운 사람들과 여러 일들이 있었고,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기에 바빴다.

4개월 동안 밀린 월급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그로 인해 바닥을 치다 못해 잃어버린 나의 의욕은 언제 찾을 수 있으려나 싶다. 이제 한 달 정도 남은 기간 동안 조금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 한다. 글쓰기를 습관화하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UX에 대한 공부를 이제나마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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