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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바른 토스트 Dec 04. 2023

중요한 건, 바닥나지 않는 통장 잔고

어쩌면 끝이 뻔한 이야기 :: 다섯 번째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밥 한 끼조차 사 먹을 돈이 없었다. 그나마 아끼고 아꼈던 비상금도 바닥나버렸다. 50만 원씩 차곡차곡 저금했던 청년희망적금은 깨버린지 오래였다. 남아있는 적금이라고는 주택청약적금밖에 없었고, 그건 절대 건드려서는 안되는 돈이었다. '돈 좀 모아둘걸.' 우려했던 현실이 닥치니 뒤늦은 후회가 몰아쳤다. 


올해 안으로 차 한 대를 구매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에 맞춰 생활비, 월세, 교통비 등을 계산해 이 정도면 충분히 차를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신차는 조금 빠듯해보였고 중고차 정도는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밀리고 밀리는 월급에 차는 커녕 매 달 나가는 BMW(Bus, Metro, Walk) 교통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 전 회사에서 충분히 2년 정도는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청년내일체움공제를 신청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다음 회사로 이직하게되면 신청 요건이 되는지 확인한 후 기필코 채워보리라 다짐한다. 





회사에서 제안한 체불근로자 생계비 융자를 거절했다. 설령 1,000만 원을 저금리로 대출 받는다고 해도 이자는 회사에서 책임지겠다는 구두상의 약속이 미덥지 못했고, 지금 회사에서 밀린 임금을 언제까지 지급하겠다는 명확한 기약도 없었다. 이런 상황들을 혼자서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 '회사에서 월급 줄 생각이 없어보이는데, 차라리 일단 나한테 빌려.' 선이자를 떼고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동생이 목돈을 빌려줬다. 아이폰 메모장에 적혀있는 '000만 원, 꼭 갚기' 의 금액이 업데이트됐다. 내일, 모레, 이번 달, 다음 달, 계속되던 거짓말은 멈췄다. 기약 없는 월급에 대한 회사의 침묵은 여전하다. 



by. 인스타 공백닷컴





돈이 없다는건 곤욕스럽다 못해 치욕스럽게 느껴진다. 대기업을 다니고 있는 친구는 날이 쌀쌀해졌으니 맛있는 방어 회 한 접시나 먹으며 회포를 풀자했다. 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는 교통카드 한 장만 들고 나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오픈 전부터 기나긴 웨이팅이 있는 횟집 앞에서 친구는 유쾌하게 웃으며 여러 소식들을 전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슬쩍슬쩍 나의 표정을 살피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서울까지 와줬는데, 밥 한끼도 못사줘서 미안하다.' 라는 내 말에 '작년부터 내가 먹자구 한건데 뭘. 신경쓰지마' 라며 정말 괜찮다고 말하던 친구. 방어 값의 절반을 보내면 앞으로 나를 다신 보지 않을거라는 엄포를 놓던 친구와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최대한 돈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려 애를 썼던 것 같다.


살던 집 아랫 층으로 이사한 또 다른 친구는, 집들이 초대장을 전했다. 이 친구 역시도 나의 사정을 원히 다 알고 있었다. '다 괜찮으니 그냥 빈손으로 와.' 라는 메시지를 한 참을 쳐다보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면 놀러가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얄팍해진 지갑과 통장 잔고에 마음 씀씀이가 쫌생이로 변했다. 친구들의 연락에 당연한 듯 '좋아, 만나자!' '그래, 놀러갈게!' 라는 말이 튀어나와야 할텐데, 일단 은행 어플을 켜 잔액부터 확인하는 내가 하염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기다릴만 했던 방어회 한 접시




지난 주는 눈 깜짝할 새에 돌아온 엄마의 생신이었다. 동생이 예약한 프리미엄 뷔페 가격을 보고는 '월급이 있었으면, 내가 샀을텐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엄마의 생신 선물과 외식비는 온전히 동생의 몫이 되었다. 기분좋게, 홀가분하게 보냈어야 할 엄마의 생신 날은 굉장히 무겁고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점점 나이가 드시며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몇 마디의 말들에 뜨끔-! 할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의 결혼 소식이라던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엄친아나 엄친딸 이야기, 일찍 손주를 보신 친구분들의 소식같은 것 말이다. 


'건강하면 됐지' 라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월급도 못받는 회사에 악착같이 출근하는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오죽 착잡할까 싶다. 결혼이나 손주는 차치하고,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해 안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걸 기다리실거라 짐작해본다. 




짬짬이 공부하고 있는 UX 역시도 돈이 큰 걸림돌이 된다. 자꾸만 떠오르는 돈.돈.돈. 의욕과 집중력은 금새 흐려져버린다. 이직을 위한 포트폴리오 강의는 생각보다 비용이 비쌌다. 스터디나 사이드 프로젝트는 무료로 진행하는 곳도 많았지만, 참가비나 보증금을 받는 곳도 꽤 있었다. 오프라인 형태로 진행하는 곳의 경우 올라가는 교통비를 또 걱정해야한다. 이직이 급한 마당에 물 불 안 가리고 이것저것 해봐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눈 앞을 자꾸만 가리는 돈 걱정은 신물이 날 정도다. 


외부적인 요인들을 배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봤다. UX와 관련되어 알게된 내용들을 정리하며 브런치에 기고하는 것. 굳이 강의가 아니어도 UX에 대해 인사이트를 얻거나 배울 수 있는 아티클들은 많다. 또한 월급이 밀리기 전 사둔 관련 서적들도 있으니 차근차근 읽어나가며 산화되지 않고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북 리뷰로 기록해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초라해진 마음을 떳떳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은 당장에 '돈'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위축되고 좁아지는 마음과 생활반경은 결국 돈에 귀결된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은 지금의 나에겐 너무 과분고 멀게만 느껴진다. '중요한건 뚠빵하게 차있는 통장 잔고' 그게 나를 일으켜세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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