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깎은 연필을 잡고 하얀 종이 위를 거닐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위로 아래로
가고 싶은 대로 마음껏 움직였다 그런데
삐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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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 움직인 연필이 만든 선 하나가
어긋나버려 거닐던 선들을 막아대니
놔둘 수 없어 지우개로 박박 지워버렸다
지우면 지울수록 삐져나온
선 하나는 살아남아 나를 괴롭혔다
사라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종이 위에 남은 선명한 자국 하나가
뚫어져라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허여멀건 틈 사이로 나는 보았다
슬픔이 내려앉은 기억 한 장을
아무도 모르는 나의 파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