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1
꽃을 들고 있어도 아픈 사람처럼 보여요
한사코 꽃병에 갇혀 사는데
햇볕이 필요 없을 거예요
그래도 꽃이라고 해서 그런지
걷다가도 뒤돌아본대요
지나간 꽃들은 무언가를 따르는 날개처럼
내 곁에 없어요
2
생각해 보면
자꾸 눈에서 따가운 물이 자라고 있어요
올해는 긴 장마로 고추농사도 손댈 수가 없대요
울 수 있는 자리에 바람이 불고 있어요
나무들이 그렇듯
사람들이 꽃으로 흔들리는 것을 밀어내고 있어요
뒷모습은 묻지 않기로 했어요
온통 구름아파트를 배경으로 갇혀 살면서
꽃이 되고 싶을 거예요
여기서는 꽃을 모른 척할 수 없어요
오늘은 봄 여름 지나 가을이 끝나 가고 있어요
꽃을 겁내던 아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요
꽃은 사람이 되어도
사람은 꽃이 될 수 없나 봐요
3
이건 비밀이에요
우리는 그늘을 닮아 간다는 걸 모르듯
땅에 누우면 열매만도 못하게 보여요
꽃을 따라왔을 뿐인데
그때도 꽃이 피었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꽃병에 사람이 살아요
추워도 창문을 닫지 못하고
아이를 낳고
그때부터 단 하나의 꽃이 믿음이라고
우리는 꽃이 생각나게
끝까지 울부짖곤 했지만
나중에 사람들 지나간 일을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