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1
구름층이 낮아지고
층층나무 잎사귀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리는 먼 여행에서 돌아 온 사람들처럼
등이 젖었다
아침도 거르고 상추 쑥갓 모종을 들고 밭으로 나갔다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모종을 심었다
이제 다시 먼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것들
언제나 여행의 시작은 바람처럼 활기찼다
이름 모를 풀꽃들이 빗방울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오래된 대문은 언제나 여행자의 마음 같았다
2
어쩌면 마음이란
누군가를 떠나보낸 대문이어서
칠이 벗겨지고 색이 바랬다
혼자 남아서 젖어 가는 것들
우리는 칠이 벗겨진 대문을 닫을 수 없었다
당신은 당신대로
마음의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미루나무가 긴 목을 빼고 구름 너머를 보고
당신은 대문 밖에서 어두워졌다
3
당신은 긴 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등이 젖었다
젖은 등을 따라
새 울음소리가 바람 소리가 젖은 길이 지나갔다
하루 빛이 땅에서 사라져도
그 자리에는 상추와 쑥갓들이 푸르게 빛났다
누군가 기다린다는 일로
어떻게든 젖은 등으로 사람이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