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가 음주운전 피고인이 된 사연

자존심이 뭐길래...

by Rosary

검사의 증거조사순서가 시작되었다.

“피고인, 족발집에서는 가벼운 반주만 했다고 하셨죠?”

“네, 소주 1~2잔 정도 마셨습니다.”

“그럼 자리를 옮긴 BAR에서는 술을 얼마나 드셨습니까?”

“양주 반 병 정도...”

“어떤 술이었나요?”

“조니워커 블랙이었습니다.”

"700ml 맞습니까? “

“네, 맞습니다.”

“반 병이면 350ml를 마셨다는 겁니까?”

“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 출근해서 운전할 생각이 들었나요?”

“늦잠을 잤고, 아침에 눈을 뜨니 그냥 출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두통이나 속이 메스껍거나 그런 증세는 전혀 없었습니다. 무작정, 주차장으로 달려가서 차부터 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유소에 도착하자 갑자기 숙취가 몰려왔다는 뜻입니까?”

“네,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 울리고 어지러움이 느껴졌습니다.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대리운전을 부르지 않았습니까?”

“그건 제 잘못입니다. 아침시간이라 대리운전 호출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짧은 거리라 금방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리운전 호출이 어렵다면 아내에게 와달라고 할 수는 없었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가까운 거리라서 부탁하면 충분히 오실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게... 그게 참... 전날 밤 아내가 싫어하는 술자리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이미 아내가 잔소리를 한바탕 한 데다가 저도 짜증을 내버려서 아내에게 와달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2020년 8월 어느 날, 서울 동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이다. 성실하게 20년간 직장생활을 해온 평범한 가장이 도로교통위반 음주운전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회사 소모임 회식이 예정되어 있어서 차를 두고 온 A 씨는 저녁 8시쯤 회사 근처 족발집에서 소주 반 병을 마셨다. 상견례 자리였기에 저녁식사와 반주 정도로 자리를 파한 후 10시쯤 BAR로 자리를 옮긴 것이 화근이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귀가하기 전까지 양주 반 병을 비우고 만 것이다. 자정에 택시를 타고 귀가한 것까지 좋았으나 그만 택시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택시기사는 A 씨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그를 집 앞에 내려줄 수 있었다.


A 씨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침 8시가 넘어서 눈을 뜬 A 씨는 시계를 보고 퍼뜩 출근 생각이 들어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몰고 회사로 향했다. 주유 램프가 깜빡이는 걸 발견하고 주유소로 간 A 씨는 그제야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보고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머릿속이 울리고 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출근은 무리라고 느낀 A 씨는 상사에게 오늘 하루 휴가를 쓰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허락이 떨어지자 다시 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의 걱정과 타박이 동시에 쏟아졌고, A 씨는 그만 화를 벌컥 내고 말았다. 아내와 전화로 말싸움이 이어지자 고3 아들까지 끼어들었다.

“왜 그래? 아빠 어디 있는데?”

아내는 “아유 몰라. 네 아빠 지금 술이 떡이 돼서 운전하고 있대. 미쳤나 봐 진짜.”

“아니 술에 취해 운전하면 어떡해. 음주운전이잖아. 아빠 어디라는데?”

“서하남 IC 근처래.”

“뭐? 고속도로 진입한다고? 그럼 안되지. 엄마 112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 무슨 신고를 해. 사고 난 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러다가 아빠 사고 나면 어떡해. 신고해야겠다.”

“얘, 놔둬. 아빠 난리 난다.”

이미 아들은 자신의 핸드폰 다이얼로 112를 눌렀고 아버지의 위치와 차량번호를 불러주고 있었다.

A 씨는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단속에 적발된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검거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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