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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Nov 30. 2022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쓰임이 다한 물건 비우기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은 진짜 젬병이었다. 달리기는 몇 명이 뛰든 언제나 꼴찌였고, 뜀틀은 넘는 게 아니라 올라타는 종목이었다. 이렇게 운동에 소질이 없었지만 겨울만 되면 스케이트를 타러 논두렁 스케이트장에 출동해서 얼굴은 빨갛게 얼고,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하루 종일 스케이트를 타면서 놀았다. 찬바람 쌩쌩 맞으면서 스케이트 타다가 먹는 떡볶이와 어묵의 맛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스케이트를 타러 간 게 아니라 간식을 먹으러 갔던 걸까… 


직장생활 초창기 시절, 단체로 갔던 스키장이 너무 재밌어서 역시 나는 겨울이랑 잘 맞는구나 싶기도 했다. 운동신경은 형편없지만 겁이 없어서 스키 타는데 도움이 되었다. 난생처음 스키를 타는데 우당탕탕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거의 굴러 떨어지다시피 해서 한번 내려오고 나니 두번째부터는 V자형을 그리면서 제법 모양 나게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의 기억이 너무 즐거워서였을까, 눈코 뜰 새 없게 정신없이 살다가도 겨울만 되면 스키장에 달려갔다. 스키가 익숙해지고 당시 힙했던 스노보드에 입문하기 위해 스키장 시즌권도 지르고, 장비를 장만했다. 2002년 11월은 그렇게 설레면서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그해 12월에 접어들어 이제 본격적으로 주말 스키장행을 시작하려 했는데 어머니께서 큰 수술을 받게 되었고, 나의 스노보드 장비는 고스란히 창고행이 되었다. 언젠가는 쓰임이 있으려니 하면서 창고에 들어간 장비는 단 한 번도 써먹지 못한 채 세월만 더하고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스노 보드는커녕 스키 탈 엄두도 못 낼 나이가 되어버렸고, 지난해 집을 정리하고 이사하면서 이제야말로 진짜 떠나보내야 할 때라는 걸 실감하고 당근 시장에 올렸더니 처음으로 아이를 스키장에 데려가신다는 아빠가 흔쾌히 구입하셨다. 아빠와 함께 신나게 보드를 즐길 아이를 떠올리니 내 마음마저 푸근해졌다. 


이사를 하면서 가장 골칫거리는 언제나 책 무덤이었다. 오래된 책은 기증도 안되는데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깝고, 가져가기엔 짐이 되고 여러 가지로 천덕꾸러기 신세다. 낡은 책장을 버리면서 그만큼의 책을 버리고 왔지만, 여전히 책장의 책은 차고 넘친다. 책은 버리면 버린 만큼 사게 되는데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책이 애물단지라고 했더니 노안이 와서 이제 책 읽기도 힘든데 그냥 다 버리라는 돌직구 조언을 들었다. 


물건들은 제각각 쓰임이 있을 때 그 가치가 있는 것. 소임을 다하면 자리만 차지할 뿐인데 왜 이리 물건 정리가 힘든 것일까. 그래도 옷걸이로 썼던 러닝머신도, 더 이상 보지 않는 DVD 플레이어도, 앉으면 불편한 오래된 소파도 버린 경험이 있으니 다른 물건들도 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언제일지가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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