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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Dec 02. 2022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마음이 힘들 때, 산에 올라봅시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픈 어머니와 살게 되었을 때 푹 잠들기가 힘들었다. 힘들게 잠이 들어도 어머니 방에서 작은 소리만 들도 눈이 떠졌고, 몇 번이고 어머니가 잘 주무시는지 들여다보느라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잠을 설치자 낮에 잠들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다시 밤에 잠을 못 자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머리는 멍하고 항상 피곤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 새벽, 눈이 떠지자 멀뚱멀뚱 있는 것보다 동네 산이라도 갔다 오자 싶어서 어머니가 주무시는지 살피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 공기가 상쾌했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날부터 나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팔각정까지 다녀오는데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지만, 상황에 따라(어머니가 전화를 하면 즉시 돌아와야 했기에) 1시간 내로 돌아오기도 하면서 그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산에 다니면서 꽃도 보고, 나무도 보면서 답답함을 조금씩 달랠 수 있었고, 밤에 잠들기도 수월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일주일 후, 제주도 한라산에 올랐다. 대학 졸업여행으로 간 이후 제주도에 가도 한라산에 갈 생각은 한 적이 없었는데 수십 년 만에 다시 한라산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한라산에 가는 것도 절차가 생겼고, 미리 예약해야 갈 수 있는 산이 되어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공복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갔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음날 다시 한라산 등반에 도전했다.

매일 동네 산에라도 다녀서였을까. 생각보다 한라산 오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온통 돌인데 등산화 아닌 운동화 차림이어서 발바닥이 좀 아팠을 뿐, 정말 오랜만에 산다운 산을 오르는 걸 감안하면 몸은 매우 가벼웠다. 날씨가 매우 청명해서 백록담도 환하게 볼 수 있는 행운을 마주하고 기분이 좋았는데 정상에서 산을 내려오는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산을 좋아하던 엄마가 한라산에 오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그 제주 여행에서 차마 맛집을 가지 못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 부모님께 죄스러운 기분이 들 것 같아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올봄에는 동해 두타산에 다녀왔다. 험한 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보고 싶었다. 역시 등산 스틱도 없고, 등산화도 없이 그냥 청바지 차림으로 갔다. 두타산은 한라산보다는 훨씬 험하고, 오르기 힘든 산이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산을 오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지금도 가능하면 동네 산에 매일 가려고 한다. 남들처럼 건강 관리를 위해 가는 게 아니라 계절마다 산이 바뀌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서 간다. 올라갈 때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천천히 구경하면서 내려온다. 산에서 보는 꽃과 나무가 무슨 이름인지 찾아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항상 거기에 있었던 그 꽃과 나무를 보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마음이 힘들고, 고민이 많은 친구들, 날씨가 조금 추워지긴 했지만 동네 야산이라도 올라가 보길 추천합니다.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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