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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ry Dec 07. 2022

컨택트

대화의 기술과 연습

카톡형통사회에 살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대화는 말할 것도 없고, 전화 통화를 하는 일도 크게 줄어들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조금씩 심해지다가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활동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전화 공포증’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메신저를 사용한 세대 중 일부는 전화로 대화하는데 어려움을 느껴 전화할 일이 있으면 대본처럼 미리 할 말을 적어두기도 하고 심하면 전화가 오기만 해도 심장이 뛰거나 식은땀이 나는 신체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아직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데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주 보고 말하는 대화가 어려워진다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메신저는 표정을 볼 수 없고, 억양을 들을 수 없다. 이모티콘을 사용한다고 해도 서로 다르게 이해할 때도 있다. 그래서 메신저로 대화하다가 감정이 상하거나 오해가 생긴 것 같아서 급하게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메신저가 일반적이어도 모든 대화를 메신저로 할 수는 없다.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마주 보고 직접 말하는 대화가 중요하다. 내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 상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대화하는 기술과 연습이 필요하다.


젊은 시절에는 낯선 사람이 말 거는 게 세상 부담스럽고 싫었다. 당신 자식 자랑을 위한 빌드업으로 이런저런 걸 물어보는 택시 기사, 버스 정류장에서 상세한 길 안내를 빙자한 대화를 시도하는  할머니… 그분들의 공통점은 상대방이 무슨 대답을 하는지 큰 관심도 없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시전을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꼭 나일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라도 소통이 아니라 일방통행을 원하는 것, 누구라도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그런 분들에게 걸리면 내 말은 공중분해되고, 일방적인 리스너가 되어야 하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라 말 그대로 딱 질색이었다. 내가 왜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쓸모없는 말들을 들어줘야 하나 싶어서 어떻게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출할 때 꼭 음악을 듣지 않더라도 이어폰은 필수템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 생각도 나고, 나 자신도 온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나가는 하루를 보내는 날이 있다 보니 조금은 그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불특정 타인의 대화 시도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여건이 허락하면 열심히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게 되었다고나 할까. 듣기 싫어서 철벽 치는 것보다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하고 즐기다 보니 흥미로운 대화로 이어질 때도 있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대화한다면 그것조차도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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