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성역, 점심시간

제대로 된 점심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by Rosary

거의 1년 반동안 아점으로 삶은 달걀이나 샐러드를 먹고, 조금 이른 저녁을 간단히 먹는 게 생활패턴이다 보니 점심시간에 대한 개념이 거의 사라졌었다. 그런데 요즘 도서관이 문 여는 시간에 맞춰가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다 보니 점심시간 되면 시장기가 일어 식사를 하려고 근처를 걷다 보면 어떤 식당들 앞에 대기가 엄청난 걸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외관은 평범하고 가게 크기도 매우 협소한데 뭐가 그리 특별한가 싶은 식당은 공교롭게도 둘 다 일식당이었다. 하나는 라멘, 다른 하나는 소바가 주력 메뉴라 가볍게 먹을 수 있을 듯해서 한번 가봐야겠다 싶었다.


생면을 고기, 파, 부추, 달걀노른자등 재료를 국물 없이 간장소스에 비벼 먹는 마제소바를 제주도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마제소바집을 먼저 찾았다. 실내가 비좁다 보니 주로 혼밥 하는 손님들이어서 부담 없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었지만 뭔가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줘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솔직히 제주도 마제소바집에 비하면 맛있다고 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저렴한 가격에 조금 특별한 메뉴를 먹고 싶은 젊은 손님들이 찾을 만한 곳이었다.


소바집보다 훨씬 유명하고 인기 있는 맛집인 라멘 가게는 지나갈 때마다 대기인원이 많아서 문 여는 시간인 11시에 맞춰 가봤다. 영업 시작 전이라 대기를 걸어놓고 근처 꽃집에 다녀왔더니 그새 가게에 손님이 거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기다리던 라멘이 서빙되어 나왔는데 맛있긴 한데 긴 대기시간을 기꺼이 기다릴 정도인가 싶었다. 미식 즐기기가 하나의 유행이고 문화로 자리 잡은 2030들은 즐거운 추억으로 삼을 만 하지만 아무리 맛집이어도 오랜 시간 기다리지 못하는 나는 이런 틈새시간을 노리는 걸로 만족한다.


광화문 근처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막내 시절, 오직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를 오는 것 같은 선배들 덕에 전통의 맛집에 참 많이도 갔는데 서둘러 출발하지 않으면 식당 밖에서 20~30분 기다리는 건 보통이었다. 선배들은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 순화동, 북창동, 신당동, 세검정 원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눈이 펑펑 오는 겨울날 유명 추어탕집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면서 이게 대체 뭐 하는 건가 싶었지만 선배들은 그 대단한 추어탕을 먹기 위해 기꺼이 반시간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성스러운(?) 점심시간의 수호자들이었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직장인들에게 1시간 남짓하는 점심시간은 단순히 식사 시간이 아니긴 하다. 식사를 하는 핑계로 한숨 돌리면서 쉬기도 하지만 오후까지 견딜 수 있는 동력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제일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기분전환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면 “오늘은 또 뭐 먹지?” 고민이 시작되고, 매일 먹으면서도 뭔가 다른 메뉴를 선택하고 싶어 진다.


맛있는 식사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다.

가끔은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해도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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