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바다에 빠졌던 그때를 추억하며..
어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는 걸 뉴스를 보고 알게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시작한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8회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한때는 매년 가을이면 부산국제영화제를 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출장 때문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변변한 휴가나 여행 없이 일만 했던 시기였기에 출장을 핑계로 부산에서 며칠 동안 영화만 보다가 오는 일은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다.
90년대부터 우리나라 문화계는 아주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고, 영화계 역시 대기업들이 뛰어들면서 거대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영화계에 새로 들어온 젊은 인력들은 과거의 영화인들과 현저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신씨네, 명필름, 우노필름 같은 젊은 영화사들이 선보인 영화들이 연이어 흥행을 하면서 영화판이 달라졌고,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돈이 되는 문화사업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영화가 대부분이어서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은 소규모 시네마테크에서 조악한 화질의 복제비디오를 보며 갈증을 풀었던 90년대에 열흘 동안이나 전 세계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영화제를 한다니 그야말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1회 관객이 18만 4천여 명을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둔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초청국가와 영화편수를 늘려나가면서 매회 2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모으며 젊은이들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가기 시작한 건 2001년(6회)부터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 부산에 가본 적이 없는 나는 첫 번째 부산행이 얼마나 들떴는지 모른다. 영화제가 시작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였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연착륙한 상황이었고,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 관객들의 열정이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아침부터 오밤중까지 눈이 뻘게지도록 영화를 보는 강행군에도 모두가 즐거웠다. 수영만 요트 경기장에 마련된 야외상영장에서 바닷바람에 맞서기 위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던 기억은 젊은 날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꽃은 화려한 정식행사가 아니라 일정을 마치고 해운대 포장마차에서 벌어지는 술자리였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단지 업계 종사자라는 이유만으로 합석하고, 술잔을 기울였던 거짓말 같은 시간들은 지금 생각해도 낭만적이었다. 물론 바닷바람과 낯선 사람들과의 음주가무는 취기를 빠르게 올리는 바람에 평소 주량에 미치지 못하게 마시고도 꽐라 되어 고꾸라지는 사람들이 속출했지만, 열흘 동안은 매일매일이 축제 같은 시간이었다.
나 역시 여기저기서 주는 술을 다 받아마시고 숙소에서 뻗어버리는 바람에 그다음 날 오전에 예약해 둔 영화들을 놓치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추억이 되었다. 다음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해장을 하러 완당집이나 복국집에 가면 어제의 용사들이 나와 똑같은 얼굴로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멋쩍게 인사를 나누고 합석해서 지난밤 그 험한 전쟁터의 최후의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해장술을 또 한잔 하기도 했다.
2001년에서 2006년까지는 거의 매년 그렇게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겼던 것 같다. 더위가 꺾이고,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이번에는 또 무슨 영화를 보러 가나 열심히 초청작 리스트를 뒤적이고, 기차표와 숙소를 예약하느라 신이 났었다. 그렇게 매년 가을의 연례행사였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영어명칭이 PIFF(Pusan)에서 BIFF(Busan)으로 변경된 2011년부터는 실제로 그때는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기도 해서 내게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부산국제영화제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니 아, 이제 진짜 가을이구나 싶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서울에만 살았던 나는 부산시민들의 다소 무뚝뚝한 말투에 적응이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부산시민들의 말투도 매우 따뜻해짐을 느끼면서 부산은 완전히 관광도시로 거듭나게 된 걸 피부로 느낄 정도였다. 젊은이들과 부산시민들 모두에게 즐거운 축제가 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도 무사히 잘 치러지길 멀리서나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