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허락된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
한국인 기대수명은 83.6세로 OECD 국가 중 일본, 스위스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 우리나라는 장수국가에 해당한다. (OECD 보건통계 2023) 주위를 둘러봐도 60대는 더 이상 노인 취급을 받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사회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80대는 접어들어야 노쇠함이 느껴질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젊게 사는 것 같다. ‘백세시대’에 걸맞게 외모와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고 살아간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간혹 TV 프로그램에서 젊은 나이에 투병을 하는 분들을 보거나, 브런치에서도 투병 관련 글을 접하게 될 때가 있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경우, 실감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부모님을 모신 수목장에서 젊고 창창한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분들의 명패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80년 대생들도 있고, 심지어 90년 대생들도 적지 않다. 투병을 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했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했거나 그 사연을 알지 못하지만 수목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엔 아직 젊고 앳된 얼굴들을 대하면 마음이 참 먹먹하다. 부모님의 기일이나 명절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명패를 보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들을 묻고 세상과 이별을 해야만 했던 그 수많은 흔적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지만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오늘 하루 직장에서 힘들었던 일, 사람들에게 시달렸던 일들도 내가 살아있어서 겪었던 일들이구나 생각하면 속상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느낌이다.
아직 나는 마음속에 작은 소망 품을 수 있고, 가까운 사람에게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을 기꺼이 표현할 수 있고, 이런저런 새롭고 즐거운 모색이 허락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인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지금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야 할 의무가 주어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