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네 말대로 있지도 않은 정자를 기증해야겠어.
울리희가 삼엄한 눈빛으로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화내지 말라고.
수염은 양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무고한 표정을 지었다.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자를 기증하겠다고 선언하는 거야. 자, 들어 봐.
그렇게 해서 울리희는 있지도 않은 정자를 기증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1) 수염이 내뱉은 기나긴 가속주의적 아무 말은 울리희의 고막에 이중 부정이라는 논리적 형태로 응고되어 도달하였다.
그러니까 수염의 입에서 나온 명제는 대략 이러했다.
‘자본주의의 파괴적 경향을 가속하여 자본주의를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 체계를 건설한다.’
이 명제는 호문쿨루스 방어체계에 가로막혀 절단이 나고 부상을 입는 바람에 울리희에게 이렇게 전달되었다.
‘파괴를 파괴하면 생성이 이루어진다.’
‘가속을 가속하면 정지/파괴가 이루어진다.’
울리희는 이중 부정이 사용된 문장이―즉, 한 문장에서 부정소가 두 번 사용되면 긍정의 의미로 해석되는 문장이 혁명적 전환의 논리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이 논리는 지금 울리희에게 아주 긴요한 것이었다.
울리희는 있지도 않은 정자를 기증하고 싶어 하였으므로 ‘있지도 않은’이라는 하나의 부정소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다른 부정소 하나와 결합하기만 하면 긍정의 결괏값을 도출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어떠한 부정소가? 어떠한 긍정의 결괏값이? 그렇게 묻고 싶은가?
2) 일단, 울리희의 ‘있지도 않은 정자는 있지도 않은 난자와 결합하여야 한다.’
여기서 ‘있지도 않은 정자’라는 부정소는 ‘있지도 않은 난자’라는 또 하나의 부정소와 결합되었다.
물론 다른 부정소와 결합할 수도 있겠으나 울리희가 원한 것은 ‘있지도 않은 난자’였다.
그래서 울리희는 다음과 같은 긍정의 결괏값을 얻을 수 있었다.
‘있지도 않은 정자가 있지도 않은 난자와 결합하면 실제로 아이가 생긴다.’
그러니까 허구와 허구가 결합하면 허구성이 상쇄되고 실재를 창출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패한 중세 연금술사들의 시도, 즉 플라스크에 담은 정액을 숙성시켜 인간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오늘날 울리희에게 도달하여 있지도 않은 정자로 인간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을 낳기에 이르렀다.
울리희는 조너선 메이어르가 창안한 자기 생산의 기획을 울리희 자신만의 방법으로 가다듬고 강화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이중 부정의 전환 논리로 자기 자신을 생산하는 새로운 공식을 창조한 것이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새로 도출된 강령을 실천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울리희는 만세라도 부를 기세로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