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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Sep 10. 2024

예술분과로서의 나르시시즘(4)

이렇게 울리희의 머릿속에서 한 타래의 생각이 흘러나왔다. 울리희는 뒤엉킨 생각의 실뭉치를 풀어 새로 엮는 고된 삯바느질을 마친 터라 지친 한숨을 몰아쉬었다. 

수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치 울리희가 삯바느질로 지어낸 알 수 없는 문양의 태피스트리에서 아름다움을 읽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었고 수염은 그저 울리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졸고 있었다.

울리희는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 내려쳤다. 마음 같아서는 수염의 모가지를 내려치고 싶었으나 그런 야만의 세기는 끝이 났다고들 했기 때문이었다.

수염은 울리희의 손바닥과 테이블의 마주침이 빚어낸 벼락같은 마찰음과 진동에 놀라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정신을 다잡으려 애써보았지만 대체 울리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조너선 메이어르인지 하는 놈이 아주 대단한 놈이라고 치켜세우고 싶은 건가? 뭐 어떻게 동상이라도 세울 셈인가? 수염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나르시시즘의 영웅, 조너선 메이어르 만세! 


아니지.


울리희가 날카롭게 치고 들어왔다. 


영웅적인 것은 조너선 메이어르가 아니라 조너선 메이어르가 저지른 일에 대한 나의 해석이니까, 굳이 동상을 세우려면 내 동상을 세우는 게 이치에 맞겠지. 하지만 그런 건, 사양하고 싶네. 


울리희는 그렇게 말한 후에 겸양의 표정을 지었다.

수염은 새끼손가락으로 수염을 긁으면서 잇새에 낀 소시지를 혓바닥으로 빼내는 데 열중했다. 대꾸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으니 그런 소일거리라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소시지를 빼는 데 성공하고는 그것을 옹졸하게 씹으면서 말했다.


그래, 뭐 요약하면 예술 분과로서의 정자 기증 이런 건가? 


울리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예술 분과로서의 정자 기증이라…….


수염은 시간을 집어삼키기라도 하듯이 입을 쩍 벌리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아니 대체 정자 기증 이야기를 몇 시간을 한 거야? 아주 있지도 않은 정자를 기증이라도 할 기세네.


수염이 손목시계가 없는 손목을 톡톡 두드리면서 말했다. 마치 울리희를 향해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미사일을 쏘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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