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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주 Nov 13. 2022

크라잉 클럽

1화

  뭐가 불만인지 사장인 장인은 아침부터 사정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당장 때려치우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참느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무실 직원들은 그런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때 마리오가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무실 분위기를 살피고는 다음에 오겠다며 돌아 나갔다. 그는 원룸을 계약하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아침에 문자를 보냈다. 나는 전화기만 집어 들고 얼른 그를 따라 나왔다.  

  크라잉 클럽 알아요?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내 표정을 살피던 마리오가 먼저 말을 꺼냈다. 크라잉을 클라이밍으로 알아들은 나는 암벽등반은 언제부터 했는지 물었다. 

  난징루에서 우사모 정모 있어요.   

  우사모? 

  그건 또 뭐냐고 묻자 마리오는 우는 사람들 모임이라며 주먹으로 눈 주위를 문지르는 시늉을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웃고 말았다. 칠레 이민 3세인 그는 영어와 중국어 짧은 한국어를 섞어 되는 대로 말을 구사했다.           

  나는 이른 퇴근을 하고 난징루로 갔다. 고층 빌딩 사이로 난 좁은 길에 카페와 와인 바가 줄지어 있었다. 개화기 검은 벽돌집으로 이어진 골목은 집마다 난간이나 창턱을 장식한 모습이 엇비슷했다. 후통이라 불리는 미로 같은 골목에서 마리오가 말한 그곳이 어딘지 찾기 어려웠다. 벽이나 유리창에 네온이 켜지기 시작했다. 지나온 길을 몇 발짝 뒷걸음쳤다. ‘크라잉 클럽’ 이라고 쓰인 간판에 불이 들어오고 입구엔 브레이크 타임 팻말이 걸려 있었다.  

  나는 유리창에 손을 붙이고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안쪽에서 저녁 타임을 준비하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른 천으로 유리컵을 닦던 여자가 턱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홀 안쪽은 보기보다 넓었다. 나는 홀을 지나 스탠드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리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왁자한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여자가 손님들과 나누는 말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일인용 공간은 안락의자가 몸을 푹 감쌌고 작은 무대 뒤로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오픈 시간이 되었는지 실내조명이 바뀌고 스크린이 켜졌다. 화면에는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야생 체험 영상이 음을 소거한 채 흘러갔다. 굶주린 대원들이 닭을 발견하고 쫓고 있었다. 살집 없는 닭은 사람을 놀리듯 날렵하게 수풀과 돌무더기 사이로 피해 다녔다. 화면 속에서 탈진한 대원들이 하나둘 주저앉았다. 그들의 표정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대원 중 한 사람이 숨어 있는 닭을 찾아냈다. 궁지에 몰린 닭은 엉겁결에 바다로 날아들었다. 

  화면이 바뀌면서 밴드 소리가 왕왕거렸다. 누군가 무대로 나와 코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몸을 흔들어 댔다. 나는 자리를 옮길까 하다가 그냥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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