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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주 Nov 13. 2022

크라잉 클럽

5화

  크라잉 클럽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어둑한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스탠드에 기대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악이 없는데도 비트에 맞추어 어깨를 들썩이다가 팔을 뻗고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굳이 감상을 묻는다면 별 미친놈이 다 있다는 정도였다. 십 분쯤 지나 여자가 들어왔다. 문에 걸린 팻말을 오픈으로 뒤집으며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녀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여자는 비파나무 가지로 와인 병을 쓸었다. 액막이 빗자루를 보고 나는 그녀가 중국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춤을 추던 남자가 등 뒤로 지나갔다. 오픈 채팅방 구독자라고 하자 여자는 정말요, 라며 엄지를 내밀었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저요? 한국 사람이에요. 윤미오. 

  아, 하도 중국말을 잘하셔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사모에 아직 가입 안 하셨죠. 회원들은 저기 룸도 사용할 수 있는데. 

  여자가 하오쿠팡(好哭房)이라고 쓰인 방을 가리켰다. 혼자 울 수 있는 프라이빗 룸이라고 했다. 

  회원은 어느 정도? 

  오프라인으로 서른 명 남짓, 개인사업 하시는 분도 있고 주재원이나 유학생들도 가끔 와요. 전에는 서울에서 오시는 분도 많았는데….

  아쉬운 듯 웃는 여자의 얼굴에 잡히는 잔주름 때문에 파운데이션이 들떠 보였다. 여자는 내가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점점 말이 많아졌다.

  나이 드신 사장님들이 여길 더 좋아해요.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운다잖아요. 웃기는 소리 아니에요.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애가 벙실벙실 웃고 있으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사람이 아프고 힘들 때만 눈물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 좋든 나쁘든 어떤 감정도 쌓지 말고 그때그때 풀어야 숨통이 트이죠. 여긴 숨구멍 같은 곳이에요. 

  ‘숨구멍’이라는 여자의 말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었다. 두꺼운 얼음판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까 그분은 영사님이세요. 가끔 이 시간 와서 혼자 춤추다가 가요. 몸으로 우는구나 싶어요.

  그런 사람도 이런 데 와요? 

  영사라는 소리에 생각 없이 뱉은 말이었다.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저녁을 크라잉 클럽에서 보내게 되었다. 문을 닫을 때까지 뭉그적거리고 있다 보면 윤미오는 남아 있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밀크티를 내왔다. 뜨거운 차가 목을 훑고 내려가면 시원한 감이 느껴졌다. 차를 마셔야 하루가 끝난다는 그녀의 밀크티는 그녀만의 레시피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차를 마시고부터 귀가는 더 늦어졌다. 아내의 랜선 잔소리가 시작하면 나는 와인 바 이야기를 했고, 고객 관리를 위한 업무의 연장이라고도 둘러댔다. 

  목요일 저녁에 있던 우사모 정모는 매일 밤 9시로 시간을 옮겼다. 그렇다 보니 개인 룸을 신청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어느 날인가부터 신청자 가운데 추첨으로 한 시간씩 방을 쓰기로 했다. 나도 몇 번이나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룸은 약속한 시각에서 십 분 이상 지체하면 다음부터 신청할 수 없는 패널티가 주어졌다. 한번은 예정된 시간에 불이 꺼지고 한참 지났는데 들어간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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