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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Aug 29. 2023

오늘도 집 앞에 드론이 떨어지지 않길 바라며 잠듭니다

내 눈앞에서 드론이 터진 건에 대하여..


“드론 떨어졌다는데 괜찮아?”


8월 22일 아침에 일어나서 받은 문자다. 모스크바 공항들이 막혔었다는 기사가 한국에서 많이 나서 다들 걱정이 됐나 보다. 정작 이날 드론은 내가 있는 곳에서 20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고, 현지 교민들은 반응이 적었는데 한국 언론에 유난히 기사가 많이 난 것 같다.


사실 그전부터 우리 집 앞에서 드론 공격이 계속 발생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자기 전마다 “제발 오늘은 무사히, 아침에 눈을 뜰 수 있길” 기도하곤 한다. 이게 계속 새벽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7월 30일,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처음으로 드론이 떨어져서 잠에서 깼다. 그 소리가 어찌나 살벌하던지. 폭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이런 소리일까 싶다. ”쿠아아아아아아앙..!!!!! “ 하는 굉음이 났다. 처음엔 이 동네에 워낙 공사판이 많으니 엄청난 철구조물이 한 70층 위치에서 떨어졌나? 생각하고 다시 잤다. 나처럼 주변 사는 사람들도 처음엔 드론일 거라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드론 폭발 당시 촬영된 영상 캡처본


드론이 터진 바로 그 건물 앞에 살던 지인 언니가 말해주기론 1차 폭발음이 터진 3시경에는 나처럼 그냥 ‘뭐지? 공사장에 무슨 일 났나?‘ 하고 말았단다. 언니도 나처럼 상상도 못 했던 걸 테지.


하지만 두 번째로 드론이 터진 4시쯤엔 언니가 밖으로 나가보니 사람들이 밖에 나와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도 눈앞에서 드론이 터지는 화염을 볼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전쟁을 실감했을 것이다.


지나가다 찍은 도시 가스 점검 차량들

일요일이었고, 하필 그 근처 카페에 가기로 했던지라 해가 밝았을 때 거길 지나게 되었다. 아직도 수습이 한창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전쟁 현장에 사는구나.


오른쪽 건물 위쪽에 보면 드론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8월 1일에도 이 근방에 드론이 터졌고 역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이날은 당연히 이게 공사장 소리가 아니라 ‘아이고 또 드론이구나 ‘ 하고 바로 생각했다.


비상 상황이 생기면 본사에 보고를 해야 하는지라, 이땐 새벽에 바로 본사에 긴급히 연락을 취했고 본사에서도 직원이 사는 곳 인근에 이렇게 드론이 떨어진다니 걱정을 더 하기 시작한 듯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며칠이 잠잠했다. (사실 잠잠한 동안 다른 곳에서 드론 발사 시도, 격추 등 사건들이 있었지만 요 근처까진 오지 않았다.)


이제 좀 괜찮아진 건가 라는 생각이 들 무렵.

8월 18일 새벽 3시 반쯤, 정말 우리 집에서 바로 길 건너 있는 곳에 드론이 떨어졌다. 이번엔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폭발음에 잠에서 깼다.

창문을 열어 보니 하늘에 연기가 모락모락

창문을 열어보니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와, 이렇게 내 코앞에서까지 전쟁을 한다고? 주재원 생활 정말 목숨 걸고 하는구나 싶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 연기를 보는 순간, ‘아 내가 여기서 뭐 하지? 집에 가고 싶다..’ 싶었다.


옛날엔 전쟁 지역에 있는 주재원들 얘기를 들으면, 왜 자기 목숨이 위험하면서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남아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게 무로 칼 자르듯 “전쟁이 바로 제 눈앞에서 나고 있으니 그만둘게요!” 할만한 상황이 안 되네, 느껴보기도 했다.


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두려워하면서도 자리를 지켜내는 걸 보니, 혼자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드론 공격은 있었는데 여기까진 오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눈앞에서 폭발의 광경을 직접 본 기억은 나를 불안에 떨게 했다.


한번 잠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나인데, 스트레이트로 출근하라는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자는 나인데, 저 날 이후로 나도 모르게 자꾸 새벽 한 4-5시쯤 눈이 번쩍 떠져서 잠을 다시 자지 못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잠드나 보다 싶었다.




8월 22일 다시 모스크바 근처로 드론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8월 23일은, 다시 우리 집 주변으로 날아왔다. 또 엄청난 굉음이었다. 이젠 저 소리를 들으며 깨는데 0.1초 만에 ”아놔 또 드론이네. “ 하며 눈 뜨는 순간 짜증이 확 치미는 것이었다.


이후 지나가다 찍은 그날 당시 폭발이 있던 건물 사진. 건물 중앙부에 타격의 흔적이 보인다.


본사에 보고를 하고, 다시 자려고 했는데 잠에 들 수가 없었고 심란했다. 이렇게까지 계속되면 정말.. 이젠 진짜 안전한 부모님 곁으로 가야 하나 싶었고, 남자친구한테도 “나 한국 갈까?”라고 뱉어버렸다. 그의 얼굴에도 슬픈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력감을 느꼈나 보다. 내 방 창문 전체에 저렇게 테이프를 붙여주었다. 드론이 떨어지면 유리 파편 때문에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 내 얘기를 듣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걸 해준 것이다.


조금이라도 안전하라고 해준거겠지만.. 차마 자기를 두고 한국에 가지말라고는 말 못 해도, 이렇게 표현을 하는걸까. 그의 슬픈 마음이 느껴져 나도 덩달아 슬펐다.


얇디얇은 테이프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한 최선의 방안이었겠구나.. 싶어 마음이 짠했다.


사실 저 얇은 테이프가 나를 물리적으로 크게 지켜주진 못 할지라도, 저걸 매일 보자니 그의 마음이 느껴졌고 마치 날 지켜주는 부적처럼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밤에 누가 펑-펑- 폭죽만 터뜨려도 깜짝깜짝 놀라면서 “아니 이 시국에 미쳤나!!” 하면서 속으로 화를 버럭 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29일의 아침, 오늘도 역시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2023년의 8월은, 잠들기 전 매일 “오늘 새벽은 무사하게 해 주세요.” 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늘 밤에도 그렇게 잠이 들겠지. 눈을 떴는데 ‘사실 전쟁 난 게 꿈이었어’라고 누가 말해주면 좋겠다.


어제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서방이 원하면 러시아 본토에서 전쟁은 안 일어나게 할 거란 말을 했단 기사를 봤는데, 조금은 안심이 됐다. 러시아에 살면서 참, 정치라는 게 내 목숨을 쥐락펴락 하는구나 라는 걸 뼈저리게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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