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어느 날, 나는 나도 모르게 곰 한 마리를 닮아 있었다.
배를 둥글게 말고, 팔다리는 천천히 뻗은 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한낮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곰 말이다.
그 곰은 정말이지 대단한 걸 하지 않았다.
숲을 구한 것도 아니고, 벌꿀을 훔친 것도 아니고,
심지어 걷지도 않았다.
그저, 살짝 옆으로 누워 햇살을 이불 대신 덮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곰을 보며 마음이 조금 고요해졌다.
세상은 나에게 자꾸만 더 빠르게 움직이라고 몰아붙였지만,
곰은 그 모든 속도를 이기는 단 하나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곰은 누워서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쉴 줄 아는 곰’이었다.
한낮을 다 받아들이고 나면
누구보다 부지런히 제 할 일을 해낼 것이다.
벌꿀을 따고, 나무열매를 찾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을 찾아가 물고기를 잡으며
바쁘게 움직이겠지.
그러니 지금의 낮잠은 게으름이 아니라,
오후를 살아낼 힘을 모으는 조용한 준비였다.
곰은 누워 있지만 뒤처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낮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잠시 멈춘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믿어보는 것.
잠깐의 쉼이
내일의 나를 살게 한다는 걸
곰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 곰을 보며
나는 작게 다짐했다.
조금 느려져도,
조금 멈춰 있어도 괜찮은 하루를
나도 살아보겠다고.
햇살은 멈춰 있는 이에게 가장 오래 비추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