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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z Nov 11. 2022

경기둘레길 패스포트 도착

2022.10.28

원래 배송까지 보름 이상 걸리는 건가 아니면 내 신청 정보가 누락이 됐나, 혹시 오프라인에서 수령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안 오면 말자는 식으로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궁금함이 커지고 조금씩 애가 타던 차에, 드디어 경기 둘레길 패스포트와 경기 둘레길 코스 안내지가 도착했다.


안내지와 패스포트는 한 번에 최대 2부씩 주문할 수 있길래, 한 부는 보험 삼겠다는 욕심으로 패스포트와 안내지 모두 2부 씩이나 신청했었다.  그 때문인지 우편함에 끼워져 있던 서류봉투는 예상보다 묵직했다. 은근히 들뜬 마음으로 뜯어본 서류봉투 안에는 실제 여권보다 아주 약간 더 큰 파란색 표지의 경기둘레길 패스포트와 10x19cm의 길쭉한 코스 안내지가 각각 2부씩 들어있었다. 안내지와 패스포트(이하 스탬프북)에는 둘레길 전체의 간략한 지도와 패스포트용 스탬프함의 주소가 공통으로 안내되어 있었고, 안내지에는 그 외에도 둘레길 60개 코스의 코스 별 간략한 안내와 표로 작성된 둘레길 코스 종합 정보 등이 추가로 담겨 있었다.


둘레길 전체의 간략한 지도를 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경기도를 하나의 시계로 보았을 때, 9시~12시 방향에 해당하는 ‘평화누리길’, 12시 ~3시 방향에 해당하는 ‘숲길’, 3시 ~6시 방향에 해당하는 ‘물길’, 6시 ~9시 방향에 해당하는 ‘갯길’, 둘레길은 이렇게 총 4개의 테마로 나뉜다. 시계의 9시 위치에 해당하는 1번 코스를 시작점 삼아 시계방향으로 보면, 경기 북서부에 해당하는 ‘평화누리길’에는 김포, 고양, 파주, 연천이 들어가고, 경기 북동부인 ‘숲길’에는 연천, 포천, 가평, 양평이, 경기 남동부인 ‘물길’에는 여주, 이천, 안성이, 경기 남서부인 ‘갯길’에는 평택, 화성, 안산, 시흥, 부천, 김포가 포함된다. 그리고 다시 9시 방향부터 시계방향으로 테마 별 코스의 개수를 살피면, ‘평화누리길’에 총 11개의 코스, ‘숲길’에 20개의 코스, ’ 물길’에 12개의 코스, ‘갯길’에 17개의 코스가 있다.


나는 하이킹이나 산행을 꾸준히 즐기던 사람이 아니고 평소에 운동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막상 둘레길 전체 코스를 손에 잡히는 지도로 들여다보자니 걱정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안내지를 보며 난이도 별로 코스를 요약해보았더니, 전체 60개의 코스 중 난이도 ‘상’인 코스는 16개, 난이도 ‘중’인 코스는 21개, 난이도 ‘하’인 코스는 23개였다. 난이도를 테마별로도 세어보았는데, 전체적으로 남부보다는 북부의 난이도가 뚜렷하게 높고, 서부보다는 동부의 난이도가 약간 높은 편이라는 답이 나왔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향하는 방향대로 난이도가 쉬워지는 듯했다. 전부 다 걷기로 굳은 결심까지 한 것은 아니라 번호순으로 걷지 않고 접근성이 좋은 구역부터 가볍게 시작하려 했는데, 마침 내가 사는 지역이 포함되는 ‘물길’은 평균적으로 너무 어렵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편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숲길’이 가까우신 분들은 시작하겠다고 마음먹기 쉽지 않으시겠다) 다만 ‘물길’의 각 코스 길이가 결코 짧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코스 하나의 거리가 너무 길 때는 쪼개서 걷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쪼개더라도 한 코스를 시점부터 종점까지 다 끝낸 다음에 다른 코스를 걷는 것으로 결정했다.



스탬프북에 스탬프를 몇 개나 찍을 수 있으려나, 동네나 걸을 걸 그랬나,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걷기 길을 선택한 탓에 내가 결국 걷기마저 그만두게 되면 어쩌지. 기대했던 스탬프북인데 막상 받고 보니 불안이 적지 않다. 총 60코스면 일주일에 약 한 코스씩 끝낸다고 해도 1년이 넘고, 어떤 코스는 여러 번에 나누어 걷는다고 생각하면 전체 다 걸을 경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도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완주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 둘레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그저 생각이 많아 걸을 곳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 기왕 걸을 거, 걸으라고 이미 다듬어진 코스를 걸으며 스탬프도 찍는다면 조금 더 기분전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걷겠다 결심한 것이니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는데. 이렇게 마음이 생각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면 참 곤란하다. 나는 원래 쉽게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고, 지금 이 불안한 마음은 실재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일 뿐이라고, 불안한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냥 머리로라도 알아나 두라고 나에게 설명을 해본다. 그렇게 설렘보다는 걱정이 훨씬 커진 마음으로 스탬프북을 뒤적이다 보니, 스탬프북이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노트 교체가 가능한 가죽 커버에 들어갈 것 같아 보였다. 아쉽게도 스탬프북 자체가 여권보다 살짝 큰 사이즈라 가죽 커버에는 조금 억지로 넣어야 들어가는데, 그렇게 넣은 것이 못 봐줄 정도는 아니라 스탬프 북과 간단한 필기구와 메모장을 하나로 묶어버리기로 했다. 비록 욱여넣은 것이지만, 어쨌든 넣고 보니 가죽 커버에 태가 더 나는 듯하다. 평소에 아끼던 커버가 더 예뻐 보이니 그것으로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보드라운 가죽 커버를 한동안 만지작거렸다.


문득 스탬프 모으기를 하며 자전거 종주를 해본 경험자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간혹 스탬프함에 구비된 잉크가 말라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스탬프 앞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인주를 개인적으로 준비해서 다니면 좋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내가 스탬프를 찍으며 돌아다니게 될 줄 몰랐는데. ‘경기둘레길 스탬프’라는 키워드로 구글링을 해보니, 경기둘레길 스탬프 잉크들은 전부 검은색이다. 다이소에서 검은색 인주를 미리 사두어야겠다.



마음이 묵직하다. 아 나는 이렇게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또 삶에 큰 고비를 겪고 있구나. 그래도 스탬프북까지 왔기 때문에 딱히 더 미룰 이유나 핑계가 없다. 첫 코스를 언제 걷게 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겁도 나고 걷기로 마음먹게 된 이 상황이 조금 슬프지만,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는 데 호기심도 조금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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