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의사의 한의학 이야기
2012년 미국의 저명 의학잡지에 실린 논문 한편으로 비만의 역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만인 사람이 병에 잘 걸리고, 사망위험도가 높을 것 같지만 오히려 저체중인 사람의 사망위험도가 더 높고, 비만으로 판단된 사람은 사망위험도에서나 병에 걸린 이후의 회복율에서 훨씬 좋은 결과를 보인다는 내용이지요.
관련해서 2014년 SBS 스페셜에서 “비만의 역설”이란 제목으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여럿입니다. 고려대 병원 연구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에 포함된 30세 이상 100만명을 조사한 결과 저체중인 사람의 사망위험률이 과체중의 2배를 웃돌았습니다. 조금 살찐 사람이 마른 사람보다 사망위험이 낮다는 뜻이지요.
해당 연구팀은 비만하면 성인병에 쉽게 노출되므로 자신의 건강상태를 자주 확인하고, 조기에 치료해서 사망위험률이 낮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한의학 관점에선 당연합니다. 살찐 사람은 마른 사람보다 음혈(陰血, 체액과 혈액)이 풍부하기 때문이죠. 음혈은 양기(陽氣) 담는 그릇 같아서 음혈이 충족되면 더 많은 양기가 모이는데 양기는 생명력이므로 음혈 충족된 사람이 더 건강하고, 오래 생존합니다. 초가 클수록 촛불이 오래 가지요. 초는 음혈이고, 촛불은 양기이니 살과 근육 붙으면 마른 사람보다 초 크기가 커서 촛불도 오래 유지됩니다.
그러나 음혈(陰血) 많을수록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초고도 비만자가 가장 장수하겠지요. 음혈에 담기는 양기(陽氣)의 량에는 한계가 있어서 이를 초과한 음혈은 인체에서 질병 일으키는 노폐물로 남습니다. 음혈에서 음(陰)은 담음(痰飮), 혈(血)은 어혈(瘀血)이란 노폐물로 말이지요.
따라서 과잉되어 노폐물로 남지 않으면서 양기(陽氣)를 최대한 담는 음혈(陰血) 지닌 사람은 다소 살집 있어 보입니다. 너무 뚱뚱하지 않으면서 결코 마르지 않은, 몸에 적당한 살이 붙어 보이는 사람 말입니다. 한의학의 음양(陰陽) 관점에선 이 상태가 가장 건강한데 이런 사람 스스로 비만이라 여겨 다이어트하면 건강을 오히려 해칩니다. 생명력인 양기 담는 그릇을 억지로 작게 만드니까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신체질량지수(BMI)는 이런 사람을 과체중으로 진단합니다. 가장 건강한 상태인데 BMI라는 수치 탓에 건강 해치는 다이어트로 유도되고 있지요. 1998년 미국이 BMI 기준을 하향 조정하면서 더욱 악화되었으니 정상인마저 다이어트로 음혈(陰血) 그릇을 강제로 줄여 양기(陽氣)가 적게 담기도록 만들었습니다. 수치상으론 체중이 정상화되었지만 생활이 무기력해진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