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의사의 한의학 이야기
눈의 충혈과 염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습니다. 이 환자의 한방 진단에서 눈 자체는 핵심이 아닙니다. 한의학은 해부학적 ‘실체’를 ‘분석’하지 않으니까요. 환자에게 드러나는 전체 ‘현상’에 주목합니다. 여러 현상들을 취합하여 원인을 ‘해석’하지요.
얼굴이 붉다. 입이 마르고 입맛이 쓰다. 몸에 열감이 있다. 쉽게 피로하다. 맥박이 긴장되고 빠르다. 목소리가 크고 억양이 강하다. 사소한 일에 분노하고 다혈질이다. 이처럼 환자의 몸 뿐만 아니라 심리에서 나타나는 ‘현상’까지 모아 연결 고리를 찾는 ‘해석’을 거치면 원인이 파악됩니다. 이 환자의 눈 충혈과 염증 원인은 간열(肝熱)이지요.
간열로 진단 받은 환자가 반문합니다. “간의 열이 무엇인가요?” 그런데 한의사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환자가 간열의 실체를 물어섭니다. 실체를 분석하지 않고, 현상만 해석하는 한의사에게 간열의 실체는 없습니다. 간열은 해석된 결과를 표현하는 언어에 불과하니까요. 한의학 용어 대부분은 현상을 해석하는 언어이지 분석되는 실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한의사는 실체를 분석하지 않아 미신, 무당이란 악담까지 들으면서도 현상 해석으로 진단할까요? 그 이유는 한약과 침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섭니다. 5천 년의 세월 동안 선조 한의사들이 경험을 통해 현상 해석의 언어로 한약과 침 사용법을 자세하게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간열로 진단될 경우 그 치료법이 명료함은 선조들이 간열 치료하는 처방법과 침법을 정립하고 치유를 검증한 덕분입니다.
선조 한의사들이 남긴 치료법은 훌륭한 유산입니다. 비과학이라며 무시해선 안되지요. 과학으로 치료되지 않던 질병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어섭니다. 이러한 유산을 우리가 온전하게 사용하려면 현상 해석의 언어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음양(陰陽) 오행(五行)을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음양 오행은 한의학 언어의 알파벳이니까요.
선조가 남긴 임상 데이터의 실체가 모두 분석되어야 현대 한의사가 과학으로 진료할 수 있는데 이는 불가능합니다. 실체 분석과 현상 해석은 패러다임(과학은 환원주의, 한의학은 전일주의)이 다르니까요. 서로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과 외국인의 대화와 같습니다.
“한의학이 과학입니까? 한의학은 신화 아닌가요?” 이 질문에 저는 답합니다. “꿩 잡는 것이 매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환자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선 선조들이 남긴 치료법이 필요하고, 그 치료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실체 분석의 과학 아닌 현상을 해석하는, 음양 오행의 언어를 써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