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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링 Feb 17. 2024

이겨서 뭐 하려고? 지금은 져야지.

동물들이 굳이 안 싸우고 도망갈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 존댓말 하잖아. 그러면 져야지.

- 이겨서 얻을 게 없잖아.


 "  oo님, 이 건 확인 다시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아, 죄송합니다. 실수가 있었던 거 같네요.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


 옆팀에 동료가 무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보고건을 내 책상 위로 올려놓는 모습을 보고 나는 존댓말로 답을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직원이 내게 물었다.


 " 너희 둘이 친한 거 아니야? 둘이 동갑인 걸로 아는데 서로 존댓말 해? "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직원에게 답을 했다.


 " 친한 것도 맞고, 평소에는 서로 반말하는 것도 맞는데 지금 저한테 존댓말 하잖아요. 저건 화났다는 표시예요. 그러면 저도 얼른 존댓말 해야죠. "


" 뭐야, 너 눈치 보는 거야? 너 쟤한테 져? "


" 져야죠. 지금 화났잖아요. 여기서 이기겠다고 대들면 물려서 피만 나요. 저도 생존의 위협이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피할 줄 알아요. "


 굳이 모든 문제에 다 대응하지 않는 건 그럴만한 시간도 없지만 더 중요한 건 그렇게 대응해 봐야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서로 간에 굽혀지지 않는 논쟁이 일어날 때가 있다. 순간 상대의 반응에 직감할 때가 있다.

 ' 아,  굽혀지지 않을 의미 없는 대화다. '

 그 순간부터 나는 입을 다물거나, 적당히 듣다가 대화를 마무리한다. 이건 이겨봐야 아무 득이 없는 대화일 뿐 아니라, 이겨도 상대에게 상처 줄 손해 볼 대화임을 알기 때문에 나는 설득하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다른 생각대로 놔두어도 괜찮을 때는 그냥 놔두기로 했다.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나름 설득도 잘한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얼마나 정당하고 옳은가를 알리면서 말발로 열심히 사람들을 굴복시켰다. 나는 이겼다. 내 말이 맞았다. 하지만 상대의 표정은 씁쓸하다. 그리고 내가 분명히 이겼는데 상대는 내 말대로 하지 않는다.


' 좀 전에는 동의했잖아. 그리고 내가 이겼잖아. 그런데 왜 하지 않는 거지? 왜 기분 나쁜 표정인거지? 도대체 왜 이런 거야? '

 

라고 생각하며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겼지만 이긴 게 아니었다. 분명히 승리한 거 같지만, 상대는 나와 멀어졌고, 상처를 받았고, 내 말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 싸움에는 아무도 승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이기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 너는 이 생각이구나. "

  

 나는 그냥 그렇게 놔두기로 했다.  내가 상대보다 똑똑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상대를 똑똑한 사람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 이럴 바에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야겠다. ' 생각하고 나는 나를 높이는 걸 포기하고 이제 내 주위의 다른 사람을 높이기로 결심했다.


 " 선배는 참 느티나무 같아요.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늘 자신의 일에 책임을 다 하잖아요.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선배는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누구보다 든든하고 우직하게 일하고 있어요. "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들 눈에 띄지 않지만 늘 그 자리에서 자신에 일을 성실히 하고 있는 선배를 올려 주었다. 사람들에 시선은  미처 보지 못했던 그 직원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질문을 하러 오는 선배에게

 " 아, 오지 마요. 몰라요. 선배가 모르면 저도 모르는 거잖아요.  선배가 모르는걸 제가 알리가 없잖아요."  

라고 장난스레 투정을 부렸고 선배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 아니야, 나도 모르는 거 많아. " 대답을 했고, 나는

 " 그럴 리가 없지만 정말 운이 좋으면 내가 알 수도 있으니 일단 들을게요. " 답을 했다.  내가 똑똑 해지를 포기하고 그렇게 한 명씩 다른 사람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 좋은 일을 가지고 와서 팀원 전체에게 부탁할 일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나를 보고, 평소 나서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 선배가 먼저 전체 팀원들 앞에서 입을 뗐다.

 " 네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난 할게. 네가 어련히 지혜롭게 알아서 잘했을 거고, 그런데도 어쩔 수 없으니 이렇게 말하는 거잖아. 난 네가 하라는 대로 할 거야. "


 피할 수 있는 논쟁은 피하고, 높일 수 있는 사람은 기꺼이 올려 주고, 드러 낼 수 있는 사람은 드러내 주었더니 그 사람들은 어느덧 자신을 높여 준 나를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뭐지? 나를 발견한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구나. 내가 널 인정해 주마!  이건가? '

 

라는 생각이 장난스레 들었다. 뭐 아무렴 어때. 결국 좋은 거 아닌가?


 이기고 싶을 때는 지는 법을 먼저 배우라고 했던가. 사람의 관계라는 건 질 때 더 이길 수 있는 거다. 상대를 높이려면 내가 그 사람보다 낮아져야 한다. 상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높여주고 아무렇지 않게 기꺼이 낮아져 주는 나를 보며 조금씩 인정과 신뢰를 하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높이고 잘난 척하는 사람을 보고 같이 높여 주는 사람은 잘 없다. 오히려 밉상스러워하며 낮추는 게 사람의 심리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사람은 상대도 그 사람을 높이게 되고 인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된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 사람이 행한 나의 높임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스스로 낮추고 상대를 높일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그 사람을 낮춰 버릴 것이다.  

이겨도 이기지 못하는 승자 없는 싸움은 피하는 게 상책인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져야 할 때가 있다면 기꺼이 지는 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게 나를 더 지키고 편하게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똑똑함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현명하고 똑똑한지를 알리고 밝히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떄서야 사람들은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상대가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한지 알리기 시작했더니 그 사람은 그때서야 나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면서 말했다.

 " 나는 너는 따를 거야. " 그 사람 앞에서 내가 낮아질 때 비로소 그 사람은 나를 높여 주고 인정해 주었다. 인간관계라는 건 참으로 섬세하고 어려운 거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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