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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Oct 21. 2023

시작을 알 수 없는 더치페이 결혼생활

남편과 같이 가기로 한 여행이 2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울며 겨자 먹기로 카렌트 비용 결제를 했다.  짜증 나지만 호텔 결제도 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반갑게 인사하는 그에게 나 또한 비슷한 톤으로 인사한다.


겉옷과 가방을 내려놓고 물 한잔을 마시며 눈치를 살핀다. 남편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 기회에 한번 찔러보자.


"내가 카렌트비 결제 안 하면 난 같이 여행 못 가는 거야?"  


"지난번에 너도 그랬잖아. 네가 비행기표 결제했으니까 카렌트비는 나보고 내라고.  자기가 그랬던 건 생각 안 하고."


내가 그랬던가? 그래, 그랬던 적이 있겠지.  왜 없겠나.  솔직히 우리의 '반반 계산'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내가 먼저였는지, 그가 먼저였는지, 더 이상 알 수 없다.


생활비를 정확히 5대 5로 나누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공동명의로 집 장만을 한 이후부터였다. 그전에는 다른 방법으로 지출을 나눴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 비용이나 여름캠프 비용은 내가 내고, 월세는 남편이 내는 식이었다. 월세가 어린이집 비용보다 약간 많았다.  각각의 자가용 비용은 각자 부담했다.  


일주일에 2번 오시던 이모님 비용은 내가 내고, 식료품 비용은 남편이 주로 결제를 하고.  초반에도 휴가를 가면 비행기표는 한 사람이 결제하고 호텔은 다른 사람이 결제했던 것 같다.  남편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기간에는 그의 자동차 할부금을 내가 냈던 적도 있고, 내가 차를 바꿀 때 남편 또한 얼마간 보태주었다.  그렇지만  막 아이를 낳고 수입이 전혀 없던 시절에도 나는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남편에게 현찰을 받아 본 적도 없다.  남편은 본인의 자산이 어느 은행에 얼마나 있는지, 단 한 번도 나에게 알려준 적이 없으며 당연히 난 그 계좌내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결혼 10년 만에 내 집을 사면서 그동안 만들어만 놓고 쓰지 않던 공동계좌에 한 달에 한 번씩 일정한 금액을 입금하기 시작했다.  그 통장에서 매월 대출비용과 공과금이 나간다. 재산세, 아이 학비, 교육비, 같은 기타 비용이 나갈 때는 필요한 만큼 더해서 입금한다.  장은 보러 가는 사람이 내고, 외식비는 먹자고 한 사람이 결제한다.  식료품 지출 비용은 계산해 본 적은 없지만 비슷하지 싶다.  내가 장을 보러 갈 때도 있고 그가 갈 때도 있으니.  그 외 비용은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  


가족공동체로서 발생하는 비용을 공동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내가 반도 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번 휴가는 좀 애매하다.  휴가라기엔 난 그다지 내키지 않고 가족여행이라기엔 아이가 빠진 여행이다.  아이가 생긴 이후, 아이 없이 단둘이 낯선 곳을 누빈 경험이 전무한데, 우리 과연 괜찮을까? 단둘이 일주일이라니. 벌써부터 걱정이다.  내키지 않는 여행이니 지출 또한 내키지 않는다.


어차피 똑같으니까 살고, 그러니 사나 보다 싶지만, 불쑥불쑥 비참한 건 어찌할 수 없다. 나를 못 믿어서 그런가? 내가 자기 돈을 빼앗아 갈 거라고 생각하나? 결혼 초반의 나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아닌데? 이렇게 반반 나눠 살 거면 룸메랑 살지 왜 같이 사냐, 묻고 싶다가도 참는다.  그래, 네가 안 알려주면 나도 내가 얼마 버는지, 얼마를 모았는지, 안 알려주면 되지.  그래도 뭔가 억울하면 하향평준화를 하면 된다.  50%의 기여조차 하지 못하는 배우자들도 허다한데,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그가 그래서 내가 그런 건지, 내가 그래서 그가 그런 건지, 소용없는 질문이다.  살다보니 어차피 똑같은 인간 둘이 모여서 똑같은 짓 하면서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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