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이와 알렉스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는 표정이 무척 고무돼 있었다. 영어 전공자 출신이면서 현재 한국어 강사로 재직 중인 완벽한 문과 출신 여자 친구가 일하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함께 한강에서 풀었다고 했다. 그는 K-예능 못지않은 버라이어티 쇼보다 더 화려하고 다채로운 여자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자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피하지.”
이 말을 들은 알렉스는 동료를 피하는 것이냐며 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그냥 동료와 좀 거리를 두는 게 어떻겠냐며 다독였다. 그러나 여자 친구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그렇게 온화한 생각보다는 더 강력한 정신 상태가 필요하다고 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을 끝으로 남은 맥주를 시원하게 비우고 열심히 일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고 했다.
결정적 화행 결정면의 수정 수리 공식:의미<-1 화행≧1, 단 0≦배출 어휘≦1
|〔 〕 피하지. 〔 〕 피하-지
[형태:서술=서술, 화계:화계 없음/ 의미:동작 실행, 화행:동작 실행, 단, 배출 어휘]
결정적 화행 결정면=화행 단, 배출 어휘≦1, 따라서(∴) 배출 어휘(화행)>의미
알렉스는 남현이에게 ‘단’이라는 새로운 수식 조건을 보여 줬다. 그는 ‘결정적 화행 결정면’의 정확도를 위해 품사, 화계, 형태가 위치한 좌변과 의미와 화행이 위치한 우변이 겹치지 않도록 설정해 놨는데 이때 ‘입력값’으로 완전한 비속어도 아니고 속담처럼 문화를 반영한 것도 아닌, 한국식 ‘배출 어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큰 실수라고 했다. 그는 신속하게 수식을 설정했다. 화행이 단순 동작 실행을 의미한다고 해도 배출 어휘로 분류되는 변이는 1보다 작거나 같다고 분류해서 화행이 1보다 더 크거나 같다는 생성값을 갖게 된다고 했다.
드디어 때가 됐다. 처음 시뮬레이션을 했을 때 오류를 산출한 서술어를 다시 분석해 보기로 했다. 알렉스는 긴장된 표정으로 새로 수정한 수식을 보았다. 그는 그답지 않게 떨고 있었다. 이번에도 ‘화행 미반영’이라는 오류를 보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남현이도 벌써 걱정이 됐다. 알렉스는 수식을 입력한 후 실행키를 치기 전에 의구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현, 혹시 이번에도?”
남현이는 알렉스의 말을 듣기만 했다. 간밤에 소립자 상태로 대우주를 분자 구조를 본뜬 음악에 홀려 정령처럼 쏘다닌 덕분에 차분해졌다.
“설사, 이번에도 또 그렇다 하더라도…. 난 절대 놀라지 않을 거야. 남현, 정말 맞아?”
남현이는 알렉스가 언급한 ‘설사’에도 놀라운 의미가 있다고 알려 줄까 하다 말았다. ‘설령 –다 하더라도’와 같은 고급 문법이 한국어 문법 4급에 있는 걸 서점에서 파는 한국어 교재에서 쓱 본 것이 떠올랐다. 남현이는 조용했고 차분했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을 요새 부쩍 많이 느꼈다. 판교에는 과학적 신념과 창의성만 필요했다. 창의성이 없다면 과학적인 그 무엇으로 중무장해야 했다. 과학적인 탐구를 통해 무언가 대단한 발견을 할 수 없다면 과학적 탐구를 하려는 정신이라도 있어야 했다. 남현이는 인제 뭘 좀 알 것 같았다. 알렉스와의 만남을 통해 남현이는 계속 무언가를 알아 갔다. 알렉스는 실행키를 입력했다. 결과가 산출됐다.
입력값
|〔 〕알아서 치우겠습니다. 〔 〕알-아서_치우-겠-습니다.
[형태:서술=서술, 화계:상향/ 의미:의지 표현, 화행:하극상 단, 배출 어휘≦1, 화행≧1]
결정적 화행 결정면=화행 단, 배출 어휘≦1, 따라서(∴) 하극상(배출 어휘)>의지 표현
생성값: 제가 싼 똥은 알아서 치우겠습니다.
데모 상황
화계(상급자):자네, 싼 똥은 알아서 치워야지. 역산 추론
화계(하급자):제가 싼 똥은 알아서 치우겠습니다. 생성값
알렉스는 모니터 화면을 꼼꼼히 살폈다. 그 어디에도 ‘오류’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는 해냈다. 한편으로는 정말 이런 말들을 한다는 것이 아주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했다. 알렉스는 성취감에 휩싸여 남현이를 쳐다보았다. 그때 남현이가 소리를 질렀다.
“알렉스, 어디에선가 지독한 냄새가 나지 않아?”
남현이는 코가 비틀어질 정도로 세게 붙잡았다.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 악취의 역습을 막고 싶었다. 알렉스의 얼굴이 물속에서 출렁거리는 것처럼 일렁거렸다. 알렉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악취로 신경이 예민해질 때마다 남현이를 다독여 준 것처럼 침착하게 남현이를 진정시켰다.
“남현, 난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 하긴 나도 정체 모를 냄새로 고생했어. 이 힘든 시기가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니까 마음 편히 가져.”
-7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