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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JJ봇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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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운아 Sep 09. 2023

8. ‘나’는 배출 어휘 처리사

 ‘남현이는 지금쯤 회사에서 알렉스와 일 잘 하고 있겠지.’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남현이가 가벼워진 만큼 난 무거워져서 어디로 나갈 수가 없다. 남현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회사로 가 버렸다. 나는 남현이를 위해서 디퓨저 마개를 열어 놓는 것으로 하루 업무를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아무도 냄새가 난다고 화를 내거나 흥분하지 않을 것이다. 


 | 와_진짜_똥X-를_빠_네.


  완전 비속어 ‘똥X’를 ‘똥구멍’으로 바꿔 놓고 다시 ‘항문’으로 바꾸었다. 이런 배출 어휘를 분석하는 일이 나로서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정신은 가볍지 못했다. 무겁고 끈적거리고 불쾌했다. 나에게는 냄새 나는 정신만 남아 있다. 정신만 남은 것도 사람 구실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는데 냄새까지 나는 정신의 소유자니 내가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이 세계에는 없었다. 밖에 나가서 거리를 활보할 때 받는 냄새나 풍기는 정신이라는 눈총은 이젠 익숙해져서 괜찮다. 나는 저 배출 표현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를 회사에서 직장 상사에게 출세하기 위한 부하 직원이 아부한다는 뜻을 속되게 표현한 것이라 기술했고 그걸 메모로 남겨 두었다. 알렉스가 세운 수식에 오류를 가져다주는 배출 어휘가 직장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를 객관적으로 정리해서 보내야 했다. 정제된 데이터를 가지고 알렉스는 그걸 남현이에게 어떤 프로그래밍 코드로 짜 넣어야 할지를 지시했다. 지독한 악취가 날 것 같은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게 익숙해질 법도 했는데 이번에는 나를 위해서 스틱을 집어 들어 디퓨저에 더 꽂았다. 


  진한 딸기 향이 내 몸을 휘감았다. 우리 가족은 그날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한 후 함께 거실에 모여 입가심으로 딸기를 먹고 있었다. 수업 시간 때 국어 선생이 우리 반에 던진 국문과 해묵은 농담을 어머니한테 들려줬다. 학문에 정진하라는 말이 듣기 싫었던 우리는 그저 그런 중소 도시의 인문계고에 다니고 있는 그저 그런 학생들이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한다는 생각이 직장은 잃고 싶지 않았던 국어 선생에게도 스쳐 지나갔으리라. 그는 냉큼 엄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자음 동화를 배우는 시간에 걸맞게 ‘학문[항문]을 닦자.’를 ‘항문을 닦자.’라면서 무리수를 두었다. 학생들은 모두 하품했고 그는 ‘국문과는 굶는 과.’라는 자조 섞인 말로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나는 썰렁한 국어 선생의 농담을 전달했는데 어머니의 타박이 이어졌다. 상큼한 딸기 먹는데 ‘항문 닦자.’라는 소리는 그만 집어치우라는 것이었고 당신 아들이지만 참 선생님 무안했겠다 하는 선생을 향한 안타까움을 내비치셨다. 추울수록 당도가 높아지는 겨울철 딸기가 먼 훗날 오성급 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나 카페의 디저트로 수십만 원 할 줄 알았다면 그날 나는 악취가 나든 불쾌하든 딸기를 모조리 다 먹어 치웠으리라. 


 “근데 이게 무슨 냄새지?” 어머니께서 질색하며 말씀하셨다. 


 “돈 준대.” 불쑥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여름이 되면 풍성한 푸른 잔디를 볼 수 있을 거라며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집으로 이사 온 걸 흡족해하셨다. 주차장도 잘돼 있었고 마당 한쪽에는 바비큐 파티 할 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그해 겨울은 아버지 딸기 농사가 아주 잘돼서 어머니는 더 기뻐하셨다. 몇 년 사이 딸기 농사에 뛰어든 농가가 많아져서 경쟁도 치열해졌고 농산물 경매장에 직접 갖다 팔아 봐야 푼돈만 만지기 일쑤였기에 어머니의 기쁨은 당연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https://gobelinusharmonicus.bandcamp.com/album/010101-acid-sessions-vol-1


 | 〔              〕치우겠습니다.      


 생성값: 돼지가 싼 똥은 우리가 밤에 잠시 치우겠습니다.      


 저녁이 되면 근처 돼지 축사에서 분뇨 처리를 했다. 한낮에 하면 민원이 들끓어서 야간에 했는데 정해진 시간에 한다는 걸 이사를 자축하는 날에 딸기를 먹으면서 알게 됐다. 왜 이런 그림 같은 집이 어머니와 내게로 왔을까 하는 의구심이 금방 해소되는 시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딸기 먹기가 힘드셨던 어머니는 돼지 분뇨 냄새를 맡으시자 붉은 윤기가 흐르는 딸기가 곧게 꽂혀 있는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으셨다. 아버지의 말은 동네 발전 기금 명목으로 축사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돈을 준다는 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 집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는 건 아버지 큰형이자 어머니께는 아주버님이신 나의 큰아버지께서 이 돼지 축사를 운영해 오고 계셨던 것이었다. 바비큐 파티는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그게_똥-이ㄴ지_된장-이ㄴ지_꼭_찍-어서_먹-어_보-아야_알-겠-냐?     


 내가 생각해 봐도 이런 표현은 정말 너무 한 것 같았다. 이 문장에 어떤 의미가 포함돼 있는지 어떻게 설명해 놓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어떤 일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지 않아도 눈으로 본 것 또는 생각만으로 미리 헤아려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하고 고된 경험을 불가피하게 한 사람에게 책망하듯이 말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이렇게 풀어놓고 든 생각은 이런 상황에서 쓰는 말에 왜 우리는 꼭 ‘똥’을 넣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곧잘 의문을 잘 품었다. 하라는 일을 하면서도 꼭 의문을 품었기에 내 정신은 악취와 가까워서 쓸모없었다. 남현이처럼 가벼워질 만반의 준비를 해도 모자랄 판국이었는데 가볍지 못한 대가로 나는 매일 수많은 배출 어휘를 치우는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배출 어휘의 의미 풀이를 해 놓으면 남현이는 이것을 ‘0’과 ‘1’인 비트로 분류했다. 배출 어휘로 추정되는 미가공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대체로 ‘결정적 화행 결정면’에 영향을 주는 ‘1’로 분류됐다. ‘0’으로 분류되는 일은 드물었다.        


-9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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