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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JJ봇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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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운아 Sep 09. 2023

9. ‘나’와 ‘남현이’ 그리고 ‘알렉스’

  남현이가 퇴근했다. 남현이는 디퓨저 마개 닫는 일도 그만했다. 나는 아무리 ‘천연 딸기 향’이라고는 하지만 인공적인 실내 방향제 냄새 맡는 것을 좀 쉬고 싶었는데 현재의 남현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더 가벼워졌다. 오늘도 항상 해 오던 것처럼 우주 탄생과 관련된 짧은 과학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틀어 놨다. 남현이는 금방 잠들었다. 나는 재빨리 마개를 닫았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한겨울에 비닐하우스 문을 열면 훅 풍겨 오는 그 흙 내음과 향기가 그리워졌다. 나는 그런 걸 기대하고 문을 확 열었다. 그만 발을 헛디뎌 나는 깊은 웅덩이 아래로 쑥 빠졌다.  

    

 ‘꿀꿀, 킁킁, 오잉크 오잉크, 첢첢, 뇌프뇌프’     


  나는 가까스로 벽에 박힌 툭 튀어나온 녹슨 쇠고리를 붙잡았다. 추락하면서 거친 벽에 온몸이 쓸리고 까였다. 그러나 이 고통보다도 더 무서운 건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소리였다. 헉헉거리는 거친 호흡 소리와 삽으로 바닥 긁는 소리가 뒤엉켜서 불협화음을 냈다.     


 큰아버지가 사촌 형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계실 때였다. 성악을 한다기에 뒷바라지를 했는데 사촌 형이 대학 졸업 후에 서울로 대학원에 간다는 거 때문인 것 같았다. 큰아버지는 돈으로 사촌 형을 지원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돼지 축사로 막대한 수입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로 풍족하게 뒷바라지해 줬으면 사촌 형이 인제 그만 축사를 물려받아 같이 관리를 해 줬으면 했는데 사촌 형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큰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을 읽으셨는지 아버지는 사촌 형을 호통치듯이 다그치셨다. 서울서 대학원 졸업 후 어설픈 직장 가져 봐야 먹고 살기 팍팍할 거라는 아주 듣기 싫은 말을 퍼부어 댔다. 그 말은 꼭 나를 향한 것 같기도 했다. 대한민국에 예술로 자기 밥숟가락 책임지는 예술가가 몇이나 되느냐고 묻는 말에 형은 고개를 돌렸다. 예술적 재능도 이지적 지능도 없는 내가 당신 아들이니까 말 좀 가려서 하시라고 나는 아버지께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무지하고 사리 분별 능력도 원래부터 좀 모자랐던 탓인지 온화하게 가만히 서 있었다. 


  “어머니도 제가 돼지나 키우면서 똥이나 치우고 살면 좋겠어요?” 


부밍북 제작: AI 생성 이미지 


  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 어머니께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며 물어봤다. 어머니는 말씀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그때 부쩍 피곤함을 많이 그리고 아주 자주 느끼셨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밭에서 일하시고는 귀가해 일찍 주무시는 생활을 해 오시던 어머니가 언젠가부터는 집에만 계셨다. 야간에 돼지 축사 분뇨 처리 작업이 시작되면 널었던 빨래도 얼른 걷으셨는데 요즘은 돼지 분뇨 악취에도 행동이 굼뜨셨다. 집은 돼지 분뇨 찌꺼기에 찌들어 가는 것 같았다. 야간 축사 처리 작업이 끝난 다음 날 학교에 가면 가끔 친구들이 나를 피하거나 코끝을 찡그렸다.     


  어머니는 한여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집 마당의 잔디만 푸르고 푸랬다. 정말 축사에서 분뇨 가루가 날아오는 것이었을까. 잔디는 그걸 밑거름 삼았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아주 잘 자랐다. 어머니는 너무도 빨리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내 물음에 대답해 준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난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의 나날을 보냈다.      


 ‘꿱꿱. 끼이이이이이히’     


   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쇠고리를 붙잡았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지치지도 않으셨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분뇨를 막기 위해 팔을 쉬지 않으셨다. 그래도 돈을 쓸어 모은다고 뻣뻣한 아버지의 말투가 틀린 건 아니면서도 역했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버텼지만 아버지와 큰아버지처럼은 아니어도 배출 어휘와 함께 온종일 뒹구는 건 별반 차이 없었다.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점점 버틸 힘이 사라져 갔다. 나는 돼지 똥간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팔이 후들거리고 고개가 떨렸다. 목 뒷부분이 당겨지면서 고개가 훅 들렸다. 위에서 남현이도 힘들게 비트 세계 입성을 위해 힘들게 매달려 있었다.


-마지막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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