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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끝이 없는 시작은 없다

by 제나랑


<2024년 07월 12일>

AM 11:00

어제에 이어 마지막 올레길도 함께 걷기로 한 스텔라와 메이든은 오늘 걷게 될 코스의 난이도가 낮고 오래 걸리지 않는 코스라 어제보다 늦게 만나기로 했고,


두 사람은 카페 [맨도롱] 앞에서 만나, 바로 택시를 타고 올레길 6코스 시작 지점인 쇠소깍 다리로 이동한다.

올레길 6코스는 난이도 '하'에 해당하는 코스로, 쇠소깍 다리에서 출발하여 서귀포 시내를 통과하고, 이중섭거리와 8개의 마을마다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구간을 거쳐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까지 이어지는 해안, 도심 올레길인데, 올레길 중 가파도 다음으로 짧은 코스라 초보자들도 걷기 좋은 코스이며,

총길이 11km에, 소요 시간은 3~4시간 정도 걸린다.

6코스는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포함되어 있어, 올레길 도보 여행자뿐만 아니라, 관광객들과 섞여, 자연과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제주 해안가의 고요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자연과 주민들의 삶과 문화가 숨 쉬는 서귀포 시내를 번갈아 걸으면서 서귀포의 문화와 생태를


접할 수 있어, 제주 올레길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독보적인 코스이다.

2020년도까지만 해도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을 지나가는 14km 구간인 A 코스와 해안을 따라 걷는 13.5km 구간인 B 코스로 나누어져 있어,


선택하여 걸을 수 있었는데, 테크 공사로 인해 제지기 오름이 코스에서 제외된 이후, 더욱더 짧고 편한 길로 재정비되었다.

쇠소깍 다리부터 쇠소깍까지 산책길 조성이 매우 잘 되어 있어, 시작부터 편안하고 마주한 절경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 구간을 지나가는데,


쇠소깍은 효돈촌의 담수와 해수가 만나 깊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쇠소깍'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이색적인 장소를 마주하게 되는데, 게우지코지는 툭 튀어나온 암석 지형이 전복 내장, 제주어로는 게웃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게우지코지를 지나 보목 포구와 섶섬이 보이는 구두미 포구를 향해 걷는데, 구두미 포구로 가기 전, 올레길 간이매점이자,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


숨은 맛집 [ㅈ동산 쉼터]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나오는 두 사람

구두미 포구는 작은 배들만 정박할 수 있는 작은 포구인데, 섶섬이랑 가장 가까운 포구이며, 석양 명소로도 유명하고, 스노클링 스팟으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고, 구두미는 거북이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올레길을 걸으며 숨겨진 거북이 모양을 찾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지형 이름의 유래를 알고 걸으면 더욱 재미있는 올레길 도보 여행을 할 수 있다.

구두미 포구 앞에는 작은 푸드트럭이 있는데, 올레길 도보 여행자들에게 오아시스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15분밖에 걷지 않았지만, 메이든은 떡볶이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고,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 스텔라는 어묵 몇 개와 국물을 먹는다.

부른 배를 안고 절벽 아래 계단을 내려가면 '소천지'를 볼 수 있는데, 소천지는 바다 위에 둥그런 물웅덩이가 마치 백두산 천지의 미니미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당길과 숲길 그리고 바윗길과 흙길을 오롯이 발끝으로 느끼며 걷다 보면, 귤과 말의 고장 의귀리 귤밭을 만날 수 있는데, 한가운데 자리한 [ㅅㄱ의정원]은


창밖으로 펼쳐진 제주 마을의 정겨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책을 읽으며 맛있는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카페이며, 꽃게 모형의 느린 우체통도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용하기로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따뜻한 라떼와 시그니처 메뉴인 크림뷔릴레 라떼를 주문하고, 매장 한쪽에 있는 수많은 엽서 중에 각자 두 장씩을 골라서 자리에 앉아, 편지를 쓴 후,


직원에게 말하면 봉투 하나와 우표 하나를 주면서 실링 왁스 사용법을 알려준다.

엽서 두 장을 고른 두 사람은 봉투와 우표를 하나씩 더 받아서 각각 봉투에 엽서를 넣은 후, 봉투 뒤엔 우표를 붙이고, 이름, 전화번호, 주소, 우편 번호를


정확히 기입하고는 봉투 앞면에 실링 왁스를 부어 봉투를 밀봉해, 외부에 있는 느린 우체통 안에 넣었다.

1년 후에 배송된다고 하니, 그때 두 사람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든지, 느린 우체통에 함께 편지를 넣은 이 순간 자체만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추억이 될 것이다.

"왠지 커피도 천천히 마셔야 할 거 같아요~ㅎㅎ"

"천천히 마시다 가자~ 어차피 오늘 코스는 짧으니까~"

여유롭게 음료를 마신 후, 카페를 나온 두 사람은 느린 우체통을 지나 정방 폭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정방 폭포에 이르기 전, 바다로 떨어지는 정방 폭포의 미니미 버전인 소정방 폭포를 만날 수 있다.

해외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이곳은 작지만, 물줄기가 제법 커서 땀을 식히기엔 충분했으며, 중간 스탬프 지점인 북카페 [ㅅㄹ의성]은 전망을 보며


책 읽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우수 건축자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정방 폭포를 만나고 나면, 6코스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너무 유명한 명소인 정방 폭포는 천제연 폭포, 천지연 폭포와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라고 불리는데, 높이 23m, 너비 8m에 달하며, 국내에선 유일하게


물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이기도 하다.

햇빛이 비쳐 은하수 빛깔로 변하는데, 멀리서도 시원한 폭포 소리가 들리고, 폭포 양쪽으로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 암벽도 함께 볼 수 있으며,


외국의 거대 폭포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단정하게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전통 수묵화를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또한, 명소라고 꼽기에 손색이 없는 정방폭포를 중심으로 다양한 음식점이 있어서 식사 선택의 폭이 넓다.

정방 폭포를 지나 얼마 남지 않은 길을 다시 걸어가다 보면, 조용한 자구리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자구리는 옛날에 가축을 잡는 도축장으로 사용하였고,


소 잡는 곳이라는 뜻으로 '자구리'라고 불리게 됐다.

이중섭거리로 가기 전, 자구리 공원에도 들른 두 사람

자구리 공원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바다 풍광과 함께 작가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작품을 감상하며 걷을 수 있는 공간으로, 전망대가 있어, 정면엔 섶섬,


오른쪽으로는 서귀포항과 문섬을 볼 수 있다.

해가 지면 공원에 각종 조명이 밝혀져 야간에도 제주를 만끽할 수 있으니, 6코스는 점심 식사 이후, 오후에 출발해 일몰 시각에 맞춰 자구리 공원을


방문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문화 예술로 하나 되는 자구리’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예술 작품과 조각들이 공원 곳곳에 전시되어 있으며, 공원의 끝에는 담수욕장도 자리 잡고 있어,


잠깐 발을 담그고 놀기 좋다.

조용히 자구리 마을을 지나, 스텔라가 올레길을 검색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화가 이중섭거리를 만나게 된다.

서귀포의 문화 예술 트레킹 코스인 ‘작가의 산책길(유토피아로)’의 경유지로 산책로가 이중섭 미술관에서 소양 기념관까지 이어져 있는데,


외롭고 가난했지만,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던 이중섭 화백은 자구리 해안에서 부인, 두 아들과 함께 게를 잡으며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지며, 미술관에는 그의 작품들과 아내에게 쓴 편지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근처에 있는 서귀포 매일 올레 시장에서 조금 더 걷다 보면, 올레 6코스의 종점인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에 도착하게 되며, 고요한 해변을 따라 걷다가


어느 순간 도시의 활기가 느껴지고, 서귀포 시내를 지나면 다시 평화로운 자연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바위 해안, 고즈넉한 항구,


그리고 전통적인 돌담길의 매력을 여유를 즐기며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6코스는 올레길 중에서도 특별함이 있다.

마지막 구간에서 만나는 외돌개를 독특한 자연경관으로, 그 이름처럼 홀로 서 있는 바위가 인상적인데, 외돌개는 높이 20m의 거대한 바위이고,


약 1,500년 전 화산 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남해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를 만나면 올레길 6코스는 3시간이 걸려 끝이 나는데, 스텔라는 첫날과 둘째 날 4시간 이상 걸어서 그런지, 너무 빨리 끝나버린 느낌이


들었고, 되짚어보면 자연과 도심을 모두 경험할 수 있어서 다채로웠으며, 제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코스였다.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제주 여행의 진가를 느낄 수 있던 부분이, 마치 외국인들이 처음 서울에 오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별하다고


하는 것이 도심의 빌딩 숲속에 위치한 경복궁 등이라는 걸 떠올렸고, 스텔라는 6코스를 걸으며 '아, 이런 느낌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한국의 매력을 궁금해하는 외국인을 비롯한 제주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고자 하는 여행자들에게 이 코스는 반드시 경험해 볼 가치가 있다며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올레길 가이드 역할을 하는 하늘색, 주황색 리본이나 화살표 표식이 있었고, ​정방향은 하늘색 표식, 역방향은 주황색 표식을 따라


걸으면 된다고 한다.

​촘촘히 보이는 표식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도착 지점까지 갈 수 있었다.

길을 다 걷고 편안하게 식사하고 싶었던 두 사람은 제주 올레 여행자 센터 1층 식당에서 제주 식재료로 만든 어멍밥상과 제주 보리로 만든 수제 맥주로


저녁을 먹었다.

"얼떨결에 이틀 동안 올레길 걸었는데 어땠어?"

"작가님이랑 같이 걸어서 너무 좋았죠~! 담에 기회가 되면 1코스부터 전체 코스 다 걸어보고 싶은데, 그땐 7, 8월은 피해서 올 거 같아요~ 너무 더웠어요~ㅎㅎ"

"그치~ 왜 하필 7월에 왔을까..ㅋㅋ 나 원래 한라산 등반하려고 여기 온 건데..고민하게 되네~"

"헤에~ 한라산이요? 전 생각조차 안 하고 왔는데~ 진짜 등산 좋아하시나 봐요~"

"등산이 좋다기보다는 산이 좋은 거지~ 와, 방금 진짜 노인네 같았다.."

"ㅎㅎ 아니에요~ 내일은 쉬면서 작업하실 거예요?"

"그래야지~ 이달 안으로 완성하는 게 목표라 여행도 여행이지만 작업할 땐 해야지~"

"그쵸~ 엊그제처럼 작업하시다가 연락 주세요~ 점심도 좋고, 저녁도 좋고~ 같이 밥 먹어요~"

"그럼, 내일 저녁 먹자~"

"네! 너무 좋아요~!"

식사를 마치고 1층 식당을 나온 두 사람은 다시 택시를 탔고, 카페 [맨도롱] 앞에서 내린다.

이젠 단골이 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올레길을 걷는 동안 느꼈던 감정들을 공유했다.

스텔라는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을 메이든도 동일하게 느꼈다는 걸 알게 됐고,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적지 않은 나이라 다시 연애를 하기에는 연애 세포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연애 세포들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올레길을 걸으면서 스텔라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메이든의 귀가 빨개지고, 손을 떠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는 본인의 모습에,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펜션으로 돌아와 등산복을 빨고, 2층 침대 위에 두었던 노트북을 1층 아일랜드 식탁으로 가지고 내려오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메이든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문득, 연애하러 제주도를 온 게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노트북을 열었다.

첫날 맛본 후, 캡슐 커피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그녀는 제주를 돌아다니다 원두 판매를 하는 카페를 방문 할 때마다 티백 커피나 원두를 사 왔고,


집에서 챙겨온 드립 세트로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곤 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루틴처럼 머그잔 위에 드리퍼를 올려놓고, 그 드리퍼에는 여과지 한 장을 꺼내 넣는다.

여과지 안에는 원두를 샀던 카페에서 갈아온 원두를 3스푼 정도 담은 후, 커피포트로 끓인 물을 드리퍼 위로 천천히 부으며 커피를 내린다.

머그잔 아래로 내려진 커피 향은 그녀의 코를 자극했고, 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작업을 시작했다.

작곡가 베토벤 등 수많은 예술가가 걷기를 통해 영감을 얻었는데, 스텔라는 주변 산책부터 올레길 도보 여행까지 걷는 것을 통해 감춰져 있던 자신 안의 무언가를


찾아가고, 그로 인해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는 이 과정을 통해, 그 수많은 예술가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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