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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화

결단 그리고 처단

by 제나랑


AM 08:30

시안은 가해자의 얼굴 가까이 바짝 다가가 눈을 맞추고는 왼손으로 가해자의 뒤통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움켜쥐자,


그의 눈동자 색이 푸른 빛으로 변하면서 가해자에게 최면을 걸기 시작한다.

"무술년 정사월 무신일. 설갑재. 너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만 듣는다.

니가 지옥을 가는 그날까지 '너희가 어디로 도망가든, 죽음은 너희를 쫓는다.' 그것이 너의 죗값이다.

니가 죽을 때까지 죽음이 너를 쫓는다는 뜻이다. 죽고 싶을 만큼 아프겠지만 쉽게 죽어지지는 않을 거다.

최대한 고통을 숨통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천천히 느끼다가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거다.

여기는 니가 숨어들기 위해 선택한 폐허지만, 그 이유로 너의 죽음은 아무도 알지 못 하게 되겠지.

니 죄를 용서받지 못한 죄,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음과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죄, 그 죗값을 이승에서 치르기에는 너무 가볍다.


죗값은 지옥에서 치르면 된다. 너에겐 신의 배려는 없을 테니까.

너는 지금부터 식탁 위에 밧줄을 천장에 연결해 목을 매단다. 그다음은 내가 도와주마.

억울할 자격 따위는 너에겐 없다. 나는 너를 간.접.적으로 처단하는 거다, 그뿐.

너의 마지막도 내가 인도해주마. 아, 곱게 인도하진 않을 거다, 참고로."

그 순간, 가해자는 표정이 사라지고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시안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처럼 반응하며 최면에 걸린 채, 방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가해자의 움직임은 기계적이고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자신의 의지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시안이 부여한 명령뿐인 듯했다.

방 한가운데 놓여 있던 의자를 향해 걸어간 그는, 시안이 미리 가져다준 식탁 위의 밧줄을 집어 들었다.

가해자의 손은 떨리지 않았고, 밧줄을 천장에 매달며 단호한 움직임으로 매듭을 지었다.

시안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속마음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저승사자가 인간의 생사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금지된 일이다.

설령, 그것이 간접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범위는 신만의 영역이기 때문에 저승사자라도 알 수 없다.

오늘 일이 문제가 된다면 그건 이제부터 내가 감당할 일이다.'

가해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천장에 매달아 놓은 밧줄 아래에 의자를 놓았고,

그 의자 위로 올라가 밧줄을 목에 감으며 그는 무표정하게 천장을 바라보았다.

가해자의 몸짓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꼭두각시 인형에 가까웠다.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던 시안은 의자 가까이 다가가 발로 차 넘어뜨린다.

가해자의 몸이 공중에서 발버둥 쳤고, 밧줄이 가해자의 목을 강하게 조였다.

숨이 막혀 몸부림은 점점 더 심해졌고, 의자는 이미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가해자의 발버둥은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졌고, 이윽고 몸은 축 늘어졌다.

마지막 한숨을 고통스럽게 뱉어낸 가해자의 육체를 벗어나 영혼이 분리되었고, 금세 영혼은 자신이 육신을 잃었음을 깨달았으며,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자리를 뜨지 못했다.

멍하니 서 있는 영혼의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보며 저승사자로서 그의 영혼을 붙잡고 있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얇은 검은색 실이 영혼과 저승사자의 손끝을 이어졌다.

영혼은 아직 자신의 죽음을 깨닫지 못한 듯한 표정이다.

시안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통 망자는 삼도천으로 인도한다. 살인을 저지르거나 자살을 선택한 망자들은 지옥으로 가는 유황도로 인도하지.


하지만 너처럼 인간도 아닌 쓰레기는 그 유황도 조차 건너지 못하게 될 거다. 니 놈 따위에겐 사치다. 그러니 입.닥.치.고 따라와."

시안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 안에는 냉혹한 분노가 깃들어 있었고, 시안의 말이 끝나는 순간,

영혼의 몸에서 검은색보다 더욱 짙어 보이는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기는 영혼을 휘감았고, 시안은 말없이 손끝에 연결된 실을 당겼다.

영혼이 힘없이 실에 이끌려 움직이는데, 영혼의 발아래에는 갑자기 깊고 어두운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에서 울컥 치솟는 용암처럼 뜨거운 불, 절망과 고통이 혼합되어 무언가 부패되고 있는 듯한 냄새가 영혼의 모든 감각을 짓누르는 듯했다.

살짝 발만 닿아도 살갗이 벗겨질 듯, 뜨겁고 아팠지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어디론가 하염없이 끌려갔다.

양옆에는 고통받는 영혼들이 매달려 있었고, 그들은 모두 각자의 죗값을 치르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손을 뻗어 영혼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같이 고통받아라!”

“너도 우리처럼 끝없이 타올라라!”

그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영혼 깊숙한 곳에 박히며, 죄의식을 증폭시키고 절망을 키웠다.

영혼은 귀를 틀어막으며 절규하듯 소리치려 했지만, 목소리는 허공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시안은 무표정하게 그를 내려다보며 대꾸했다.

“니가 저지른 죄를 없었던 일처럼 치부하지 마라. 니 놈이 한 짓에 대한 대가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인간들을 죽이고 니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도망치려 했다. 그 대가는 니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분명히 입 닥치고 따라오라고 했을 텐데..이럴까 봐 미리 니 혀를 뽑았다. 그것부터가 시작이다.”

시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영혼은 양옆에 매달려 있는 다른 영혼들과는 달리, 자신에게는 혀가 없다는 걸 깨달았고,


더욱 커진 절망감은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끝에 다다르자,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검은 문이 있었다.

그 거대함은 영혼을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들었고, 숨이 막힐수록 자신의 죄가 더욱 생생히 떠오르게 했다.

지옥의 문에는 양각으로 고대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그것을 읽지 못해도 그 뜻은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너의 죄와 마주할 것이다.]

[너의 손에 묻은 피가 너를 여기로 인도한다.]

[이곳에서 너의 심판이 시작된다.]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너의 발걸음이 끝나는 곳이며, 너의 죄와 고통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승에서 저지른 죄의 무게는 너의 영혼이 짊어질 것이다.]

지옥의 문자는 눈으로 읽히는 언어가 아니라, 모든 영혼이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영혼의 언어로 쓰여 있으며,

고통의 비명 소리로 전달되고, 문구 한 글자, 한 획 하나하나 용암과 피를 닮은 붉은 빛으로 불타오른다.

지옥의 문자조차도 죄인들의 피로 새겨졌고,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문 안쪽에서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비명 소리와 함께 죄책감과 고통을 영혼 깊숙이 스며들게 한다.

지옥의 문자를 보는 순간 망자는 자신의 죄와 연결된 기억이 눈앞에 떠오르며, 죄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며,

지옥의 문 주변에는 고통받는 영혼들도 문자와 함께 새겨져 있어, 죄를 짊어진 자의 끝없는 고통을 상징하고,

지옥의 문 중앙에는 죄의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도 새겨져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승에선 눈을 가린 채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이나 대법원에 가면 볼 수 있는, 눈을 가리지 않고 칼 대신 책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과는 달리,


악마가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얼굴로 웃으며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지옥의 문이 열리자, 시안은 공포에 떨고 있는 영혼을 문 안으로 밀었다.

지옥의 문은 이미 그 영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불길이 문틈에서 새어 나오면서 영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지옥의 문이 열릴 때 들려온 소리는 억울함과 고통이 뒤섞인 수많은 비명 소리였으며, 그 소리는 영혼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고,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지옥의 문이 닫히며 완전히 차단되었다.

지옥의 문이 닫히는 순간, 주위의 모든 소리가 멈췄다.

용암처럼 뜨거운 불의 열기도, 절망과 고통이 혼합된 냄새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시안은 한숨을 내쉬며 그 문을 등지고 서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고, 슬픔도 후회도 없지만, 어딘가 씁쓸함이 맴돌았다.

이후로도 지옥의 문은 새로운 죄인을 삼키기 위해, 언제나 그곳에 서 있었다.

그 사이, 허름한 폐가의 반지하 방 안에는 사후처리반 직원들이 밧줄에 매달린 가해자의 시신과 모든 흔적을 지웠고,


그들이 떠난 뒤에는 가해자가 숨어들지 전 상태의 어둡고 고요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PM 01:00

루나는 시안이 사라진 뒤로 고요한 병실에 혼자 남겨졌지만, 다시 잠을 청해보려 몸을 뉘었고,


병원에 온 이후 처음으로 깊은 잠이 들어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개운한 기분으로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눈을 떴다.

예지몽이 아니어도 깨고 나면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을 꾸며 숙면에 취하지 못하기 일쑤였는데, 이번엔 꿈도 꾸지 않을 만큼 숙면에 취할 수 있었다.

약간은 낯선 기분이 들었지만, 수면제 없이 예지몽도 꾸지 않고 잤다는 사실만으로 벌써 다 나은 것 같았다.

그때, 다시 낯익은 기운과 함께 시안이 병실에 나타났고, 그는 검은색 수트 자락을 휘날리며 루나의 침대 옆으로 조용히 다가왔으며,


그가 나타날 때마다 느껴졌던 싸늘한 공기가 이번에도 그녀를 스쳤다.

"이제 너의 고통이 사라지게 될 거다."

그녀는 그의 말을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체만으로 믿고 싶었고, 그 어떠한 것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일어나 너무 개운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녀의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 액정 화면에 뜬 이름은 담당 형사 이규호였다.

>>연남경찰서 이규호 형사님

(여보세요? 루나 씨?)

"네, 여보세요? 형사님, 그 사람 소재 파악됐나요?"

(저..그게…소재는커녕, 주민등록번호 조회조차 안 돼요…저도 이게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는데, 사건 자료랑 관련 자료들까지 싹 다 없어졌어요…

아니, 이럴 리가 없는데…아예, 애초에 없었던 사람처럼…)

"네? 그게 무슨…? 형사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 납득이라도 하죠!!!"

(죄..죄송합니다. 아니, 하아..근데 저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그녀는 핸드폰을 수납장 위로 던져버렸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그런 그녀의 오른쪽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시안

고개도 들지 않은 채로 말하는 루나

"지금은 나 건드리지 마요. 내 안의 미친년 보고 싶지 않으면…"

"그거 나다."

그의 말에 획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그녀의 시선을 피한다.

"그거 내가 그랬다고. 그 쓰레기 지옥 보냈다. 아예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모든 걸 다 지웠다."

"아니, 그걸 그냥 그렇게 곱게 보냈다구요? 내 눈앞에서 죽여도 시원치 않을 새끼를?"

"왜 내가 그냥 곱게 보냈을 거라 생각하지? '차라리 잘 됐다, 그 새끼 흔적이 사라지면서 나의 고통도 함께 사라지겠지.' 뭐, 그렇게 생각해라."

그가 한 말을 곱씹어 가며 생각하던 그녀가 침대 옆에 놓인 간이 의자를 툭툭 치며 말한다.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말해봐요."

시안은 의자에 앉아 가해자를 지옥의 문 앞으로 인도한 과정을 그녀에게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죄는 언제나 양심을 무감각하게 하고, 사람을 자기방어와 합리화의 감옥에 가두며, 안에서부터 사람을 삼킨다=

-팀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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