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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화

새로운 시작

by 제나랑


<2024년 11월 7일>

PM 12:30

병실 안은 퇴원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고, 루나는 가방에 짐을 챙기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병실 특유의 소독약 냄새도, 창밖으로 보이는 병원의 회색 건물들도 이제는 지겨워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퇴원 날짜가 정해진 후,


일주일 동안은 그것들과 작별을 고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병실을 돌아보니, 6개월 동안 누워 있던 병원 침대의 푸르스름한 시트와 하얀 커튼은


더 이상 돌아올 곳이 아닌 과거의 일부가 되었다.

그녀의 어깨에는 보호대를 한 채, 병실을 나섰고, 병동 데스크에 들러 그동안 고생해준 간호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퇴원을 도와주러 온 지욱을 만난다.

"선배, 왔어?"

"내가 좀 늦었지? 벌써 준비 다했어?"

"안 늦었고, 정산만 하면 돼~"

오늘은 커피뿐만 아니라 다쿠아즈 세트와 종류별 조각 케이크 등 간식거리들을 양손 가득 들고 온 지욱은 커피 외에는 받을 수 없다는 간호사들과 실랑이하다


몰래 간호사들의 휴식 공간에 두고 먹겠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환하게 웃었다.

"어후~ 유난, 유난~"

"지욱 씨 참 좋은 분 같아요~"

"그쵸. 좋은 사람이에요."

"루나 씨, 드디어 퇴원이네요! 축하해요."

간호사가 밝게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루나는 미소로 화답했지만, 그 미소 속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도 스며 있었다.

"저희가 환자분들과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이제 병원에서 우리랑 다시 만나지 마요.' 밖에서 건강하게 지내요.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밖에서 봐요~"

"네, 커피 드시고 싶을 때 저희 카페 오세요~ 언제든지 공짜입니다."

아쉬운 마음과 병원에선 다시 보지 말자는 진심이 담겼지만,


담담하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입원비와 치료비를 정산하기 위해 원무과로 향하는 루나와 지욱

정산을 마치고, 병원 1층 로비에 위치한 약국으로 들어간다.

복용해야 할 진통제, 항염증제 등이 포함된 약들을 처방받은 처방전을 제출한 뒤, 대기 의자에서 잠시 대기하고는 약을 받아서 병원 건물 밖으로 나온다.

병원 출입구 나서며, 루나는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겨울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익숙하면서도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야외 주차장에 주차된 지욱의 차량에 올라탄 그녀는 미리 예약해둔 케이크를 찾으러 백화점으로 가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았고,


바깥 풍경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차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미용실에 가지 못해 아무렇게나 긴 머리카락은 숏단발 스타일로 짧게 잘랐고,


얼굴에 있던 작은 흉터는 피부과 치료로 옅어졌지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어깨의 흉터처럼 팔 곳곳에도 흔적과 어딘가 다소 단단해진 눈빛이 남아 있었다.

카페로 가는 길에 근처 ㅅㅅㄱ 백화점에 내려 안으로 들어간 루나는 오늘 생일인 도운을 위해 케이크를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해 두었고,


픽업하러 왔으며, 전화번호 뒷자리와 이름을 말하자, 직원은 쇼케이스에서 그녀가 주문한 케이크를 꺼내 주었다.

진한 초콜릿 무스 케이크였고, 그 위에 레터링으로 새겨진 문구가 눈에 띈다.

[Happy Birthday, 도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평소 생일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도운이지만, 휴가도 미루고 자신을 위해 고생해준 그를 위해 작더라도 뭔가 특별한 걸 준비하고 싶었다.

케이크 상자를 받아든 그녀가 이번에는 향수 브랜드 코너에서 한참을 이것저것 시향하며 향수를 고른다.

그가 평소에 뿌리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계열의 시그니처 코튼 허그 향수를 골라 직원에게 포장을 부탁한다.

그녀는 양손에 케이크 상자와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을 나와 그녀의 카페로 향한다.

[루나의 카페]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골목에 위치한 2층짜리 단독 주택을 개조한 카페 [청월: Luna Azul]

푸른 달과 청월이라는 글자를 로고로 한 간판이 걸려 있고, 네이비 컬러의 어닝 아래로 자동문으로 된 입구가 있으며,


전면에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 구조를 밖에서 볼 수 있다.

카페 내부는 화사하면서 이국적인 분위기의 감성이 느껴지는 인테리어로, 정면으로 카운터가 바로 보이며,

카운터와 카페 바 뒤로는 아치형 게이트로 가벽을 세워서 개방된 느낌을 주었고, 아치형 문 너머에는 젤라또 제조기, 케이크와 다쿠아즈 등의 디저트와


냉동 과일들을 보관한 냉장고와 테이크아웃 용품과 카페 용품과 원두, 미개봉 재료들이 팬드리에 진열되어 있다.

팬트리 옆에는 직원들과 루나의 개인 소지품과 앞치마를 보관하는 그레이 컬러의 캐비넷도 함께 두었으며,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등받이 의자 두 개가 마련되어 있고,


의자에는 루나가 직접 자이언트 얀 실로 만든 방석은 그녀가 직원의 복지를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 수 있다.

ㄷ자로 된 카운터와 카페 바에는 각종 디저트와 병 음료들, 대표 음료 모형이 진열되어 있는 쇼케이스, 포스기, 메뉴판, 픽업 대, 업소용 2그룹 에스프레소 머신,


원두 그라인더 순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그라인더 앞에는 탬퍼와 탬핑 패드, 그리고 작업대에 매립된 넉 박스가 있고, 작업대 아래에는 개봉된 재료나 우유를


보관하는 냉장고와 별도의 수납장이 있다.

ㄷ자형으로 연결된 카운터와 카페 바 아래 외벽은 네이비 컬러로, 웨인스코팅을 추가해서 입체적인 포인트가 되어,


고급스럽고 감각적인 느낌을 강조했으며, 픽업 대 뒤쪽으로는 주로 음료 제조를 하는 조리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각종 시럽과 파우더 재료들이 있다.

테이블과 의자는 입구에서 오른쪽 부근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고, 창가 자리는 바 테이블이 있어,

혼자 온 손님이나 창밖 풍경을 보며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싶은 손님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벽 쪽에는 바 테이블 뒤부터 화장실 앞자리까지 이어진 벤치형 소파와 4개의 테이블이 있다.

카페 바의 옆쪽 홀 끝에는 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 내부 역시 화이트와 네이비 컬러가 매치되어 통일감이 느껴져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다.

PM 01:30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 루나는 익숙한 커피 향기에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오후 2시에 퇴근하는 주은과 오후 1시에 출근하는 도운이 겹치는 시간대에 일부러 맞춰서 온 그녀의 깜짝 방문에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는 주은과 도운

"사장님!"

도운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려왔다.

그는 여전히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달려왔다.

"퇴원하셨어요? 왜 미리 말씀 안 하셨어요?"

"그럼 서프라이즈가 아니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케이크 상자와 선물이 든 쇼핑백을 도운에게 건넸다.

"생일 축하해, 도운아~"

도운의 얼굴이 놀라움과 감사로 물들었다.

"진짜 이렇게까지 준비하실 필요 없었는데...감사합니다, 사장님. 항상 제 생일 잊지 않고 챙겨주시네요."

"내 사람 생일 내가 챙기는 건 당연한 거지~"

루나와 도운, 주은, 그리고 운전해준 지욱까지 가장 큰 테이블에 모여 간단한 생일 축하를 했다.

"와~ 초코가 진짜 찐해 보이네요~"

"초코 귀신 줄 거리까 제일 찐하게 해달라고 했어~"

"아~ 역시~ 우리 사장님 센스!"

27의 숫자 초에 불을 붙였고, 모두가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도운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초를 껐다.

"퇴원하자마자 오셔서 이렇게 챙겨주시고…진짜 오늘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루나는 카페 바 수납장에서 디저트 접시 네 개, 빵 칼과 포크 네 개까지 챙겨와 케이크를 조각내며 모두에게 나눠준 각 접시에 한 조각씩 주었다.

"두 사람, 고생 많았지? 도운이 밀린 휴가는 언제든지 원하는 날에 말해주고, 추가로 보상을 주고 싶은데..

추가 휴가로 받을지, 보너스로 받을지 선택해서 월급날 전까지 말해줘. 그리고 오늘부터 마감은 이제 내가 할 테니까 일찍들 퇴근해."

도운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사장님. 퇴원 첫날부터 그렇게 보호대하고 마감을 어떻게 하시려고 그래요~ 그 보호대 풀 때까지는 당분간 제가 마감할게요."

"그동안, 생일마다 2시간 일찍 퇴근은 우리 카페 룰인데 무슨 소리야~ 설거지만 좀 해주고 가. 나머진 내가 해도 돼."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아웅다웅하다가 결국 함께 마감하기로 합의했다.

지욱도 당분간은 루나를 위해 운전기사를 자처했고, 한 팔로 운전은 불가능하기에 고맙다는 말로 대신했다.

자주 오던 단골손님들도 안 보이던 그녀를 발견하고 반가워했고, 걱정해준 손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개별로,


세트로 판매하던 쿠키를 서비스로 드리니, 좋아하는 모습에 그녀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루나가 만든 카페 규칙 중에는 생일자는 반드시 [얘 생일임]의 글씨가 큼지막하게 써진 머리띠를 해야 하고,

생일자의 단 하루의 창피함은 충분한 마케팅이 되었으며, 일에 치이어 지친 표정으로 들어왔다가도 웃는 손님,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는 손님,


생일자가 마실 음료나 간식을 결제해주는 손님, 심지어 팁을 주는 손님까지 있어서 주은과 도운도 처음엔 창피해했지만, 지금은 출근할 때부터 착용하고 나온다.

물론, 그건 사장인 루나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창피함도 잠깐이라고 생각되는 효과도 있었다.

마감을 마치고, 지욱의 차로 귀가하는 길, 루나는 가슴 한편이 이상하게 묵직했다.

병원에서 나와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그동안의 시간이 길고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녀가 사는 한남동의 한 오피스텔에 도착했고, 지욱의 차량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입구로 향하는 그녀의 뒤로는 그녀의 가방을 대신 든 지욱이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두 사람은 17층에서 내렸고, 1707호가 적힌 문 앞에 서서 루나가 도어락 패드에 지문을 인식하자, 현관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집 안의 쌀쌀한 공기만이 두 사람을 반겼다.

한동안 사람이 없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의 옷을 가지러 왔던 지욱이 동파되지 않도록 낮은 온도로 설정해둔 보일러,


한 달에 한 번씩 청소 업체를 불러 욕실 청소와 먼지 청소를 해 둔 덕분에 집은 모델 하우스처럼 깔끔했다.

거실 소파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은 루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네..."

비록 사고와 고통이 그녀의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겼지만, 여전히 그녀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 그녀 대신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지욱

"Welcom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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