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기억
[다음날]
아침 일찍 일정을 위해 외출한 해주와 이환
욱은 집안 여기저기를 구경하면서 돌아다닌다.
1층을 거쳐 2층으로 올라가는데 계단 한 층이 더 있다.
천천히 발을 내디뎌 올라가 보니 다락방이 있다.
문고리에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지문인식 도어록이 달려있지만 욱이 문고리는 잡자 잠금해체가 된다.
"응? 그냥 열린다고? 이럴 거면 도어록을 왜..."
다락방은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규모가 어머 어머 한 도서관을 연상시킬 정도로 책장이 원형으로 높이 솟아 있다.
"와..."
그때 욱의 눈앞에 책 한 권이 날아와 펼쳐진다.
단경왕후 신채경의 출생부터 임종까지 기록되어 있다.
신채경의 할아버지인 신승선은 세종의 4남 임영대군의 사위였고 연산군의 장인이었으며, 신채경의 아버지인 신수근은 좌의정에다 연산의 처남,
작은 아버지 2명은 모두 형조판서를 역임하였고 작은 어머니는 예종의 비, 안순왕후의 여동생이었다.
단경왕후는 1499년 12살에 진성대군인 이 역에게 시집을 갔고, 결혼생활 7년 동안 자식은 없었으며,
이 역은 반정 당일 군사들이 처서를 에워싸자 자살을 결심하였는데 신채경이 잠시 기다리라며 집 밖으로 나가
군사들의 말머리가 집 밖으로 향한 걸 보고 돌아와 군사들이 보호하기 위해 온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사저에 신채경을 혼자 두고 이 역은 입궐하였다.
중종반정 주축 세력들이 중종의 장인, 신수근에게 반정 참여를 권했으나 거부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었으며, 신채경도 같이 폐위되지만 유배는 가지 않고 사가로 내쳐졌다.
신채경은 이 역이 반정으로 추대받아 왕위에 오르고 신수근의 거사 참여 거부로 역적으로 몰려 7일 만에 폐출당했는데
왕비가 되려면 책봉식을 치러야 하기에 7일이란 기간은 왕비가 된 기간이 아니라 중종이 그녀를 내치지 않고 버틴 기간이라 봐야 한다.
중종은 단경왕후를 폐출하는데 별다른 망설임이나 반대가 없어 보였으며, 오히려 폐출 다음날에 바로 새 왕비를 책봉하는 일을 허락하였고,
신채경의 친정은 풍비박산되어 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반정 공신들은 신수근을 죽인 자신들 앞에 신채경이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을 것이다.
중종은 하루빨리 현명한 아내 신채경을 왕비로 책봉하고 곁에 두고 싶어 하였으나, 반정 공신들은 당연히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정작 궁궐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사가에서 한 많은 세상을 살다 떠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1739년 영조 때 비로소
단경왕후로 추존되고, 온릉으로 능이 조성되었다.
"이 역에게 궁금한 게 참 많겠네, 이 여자."
"이해력이 나쁘지 않네."
해주는 이미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어느새 욱의 뒤에 서있다.
"아, 죄송해요. 몰래 들어오려던 건 아닌데..도어록 바꾸셔야 할 거 같아요. 그냥 열리던데요?"
"네가 이 역의 환생이니까 열리는 거야. 이 문은 신채경과 이 역만 열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니까. 부모님에겐 아는 척하지 마. 10년 전까진 모르셔야 하니까."
"네."
"혹시 뭐..기억 나는 게 있거나 하면..."
"네. 바로 말할게요. 근데 아직은..."
"그래. 일단 나와. 밥 먹게."
두 사람은 다락방을 나와 1층 주방으로 향한다.
양아버지가 요리하고 양어머니가 아버지를 도와 점심을 차리고 있고 이환은 식탁을 세팅하고 있다.
두 사람과 함께 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한다.
"(영어) 미팅 잘했니? 문제없지?"
"(영어) 네. 내년에 공사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영어) 완공되면 다시 캐나다 들어올 거지?"
"(영어) 네. 어차피 새 호텔은 직접 관리해야 되는 것도 있고 전 한국보다 여기가 더 좋아요. 한국 호텔은 맡길 사람 있어요."
"(영어) 누군데?"
"(영어) 아직 비밀이에요. 미리 알면 재미없죠~"
"(영어)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미리 맡기고 오지 그러니. 잠도 제대로 못 자는데.."
"(영어) 괜찮아요. 한국 호텔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았어요."
"(영어) 그래. 완공하면 온다니까 우리가 좀 더 참지 뭐."
"(영어) 근데 이 분은 썸남이니? 글만 쓰러 온 분 같지는 않은데?ㅎ"
"(영어) 아니에요. 제가 계약한 영화사 소속 작가라서 좋은 시나리오 쓰라고 그냥 같이 온 거예요."
해주의 말에 의심은 되지만 해주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믿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 짓는 양부모님
식사를 마치고 욱은 먼저 방으로 들어가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하려 노트북을 켜는데 창문으로 드리우는 따스한 햇빛,
포만감에 밀려오는 식곤증 그리고 나른한 오후 시간에,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책상에 그냥 엎드려서 쪽잠을 잔다.
[욱의 꿈]
끝도 없이 어두운 통로 속으로 계속 떨어지다가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고 눈앞에 25,000피트 상공이 펼쳐지고 낙하산도 없이 낙하 중인데
공포심도 잠시 속도가 줄어들더니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조선 시대 시장 한복판에 착지했다.
여자들의 화장품이나 댕기 등 악세사리를 판매하는 좌판대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데
선비 복장을 하고 있고 그의 뒤를 따르는 한 남자도 같은 선비 복장이다.
"전하, 이제 궁에 드시옵소서. 마마는 저희가 찾아보겠사옵니다."
"아니 된다. 반드시 같이 궁에 들것이다."
그때 비단을 구경하고 있는 채경이 보인다.
꿀 떨어지는 표정으로 갑자기 바뀌면서 미소를 짓는 이 역
"중전, 한참 찾았소. 한시도 떨어지지 말라 하였거늘."
"송구하옵니다, 전하. 이 비단이 너무 고와서 그만."
이 역은 상인을 불러 채경이 보고 있던 비단을 산다.
이 역이 선물한 비단을 소중히 품에 꼬옥 안고 이 역을 따른다.
궁으로 돌아온 후 처서에서 책을 읽던 이 역과 그 옆에서 자수를 뜨고 있는 채경이 서로를 곁눈질로 슬쩍슬쩍 보면서 풋풋하고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꿈인지, 전생의 기억인지 모를 이 상황에 욱의 심장 소리가 커지고 잠에서 깬 욱은 눈을 뜨고도 계속 미친 듯이 뛰는 심장 소리에 가슴을 부여잡고 한숨을 쉰다.
이런 꿈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