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전생 사이
한참을 울던 해주는 조금 진정이 됐는지 욱의 옷깃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떼고 품에서 빠져나온다.
"드레싱 지금 하실래요?"
"아, 그거 정 실장한테 있을 거야."
"가져올게요. 누워 계세요."
욱은 정 실장의 방으로 가려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이환이 드레싱 약품들을 들고 2층으로 올라오고 있다.
"아..그거 저 주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설명 들으셨나요?"
"네. 어떻게 하는지 알아요. 걱정 마세요."
이환이 욱에게 드레싱 약품들을 건네주고는 내려간다.
욱은 다시 해주의 방으로 들어가 해주의 침대 옆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조심스럽게 해주의 옷자락을 상처 부위의 위까지 올린다.
드레싱을 마치고 거즈 위로 옷자락을 다시 덮는다.
어느새 잠이 든 해주는 가만히 바라보는 욱
(당신을 악마로 만드는 건 결국 인간들이네요.
그리운 사람들에겐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되네요.
정 실장님도 당황하시는 걸 보니 당신이 이런 모습을
보인 게 처음인가 보네요. 능력이 제한되고 이런 일이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당신의 전생에
대한 기억이 당신의 감정을 끌어내고 악마의 본분까지
잊게 만들었나 봐요. 우리가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게 당신이 자꾸만 신경 쓰여요.
그냥 무례한 악마라고만 생각했는데...)
욱은 해주의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든다.
[욱의 꿈 속]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덩그러니 서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더한 두려움이 욱을 감싼다.
두 손을 뻗어 더듬어 가며 천천히 걸어가 보는데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의 복도 끝에 문이 있다.
문 앞까지 가서야 문이 있다는 걸 인지한 욱은
그 문을 천천히 열어보는데 갑자기 문틈 사이로 불빛이 들어오는 바람에 눈이 부셔서 눈을 감는다.
한껏 찡그리며 감았다가 떴다를 반복하며 적응을 시키자 한결 눈을 뜨기 편해진다.
욱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궁 안에 위치한 임금의 처서로 보이는 곳에 임금의 복장으로 책을 읽고 있는 욱
그러다 갑자기 수상한 기운을 느끼고 수많은 그림자들이 처서를 에워싸는 게 창호지를 바른 문 너머로 보인다.
욱은 한쪽에 진열되어 있던 검을 빼서 들고는 숨죽여 문 옆의 벽 쪽으로 몸을 밀착시킨다.
침상에는 자고 있던 채경이 어느새 일어나 이불을 꼭 끌어안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상태로 소리친다.
"누구냐. 어느 안전이라고 이리 소란인 것이냐."
검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검은 복장을 한 자객들이다.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남자가 소리친다.
"당신은 최악의 군주요. 우유부단하기 그지없고, 끌려다니는 나약한 군주를 더 이상 믿고 따를 수 없다. 왕권을 극단적으로 강화하려 하고 위선적인 면모가
당신을 죽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변덕이 심하여 신뢰하는 당신의 사람도 수가 틀리면 바로 내다 버리는 냉혹함 때문에 당신의 곁을 지키는 이는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욱은 상심 하여 그림자들은 곧 자객이고 이들 손에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자결을 하려 검을 들어 자신의 목에 날을 대었다.
그러자 채경이 소리치며 뛰어나와 욱을 붙잡는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군사의 말머리가 이 궁을 향해 있으며 우리 부부는 죽어야 하지만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다면 공자를 호위하려는 뜻일 겁니다.
부디 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전하!"
채경은 뒷문으로 나가 사람을 보내 알아보도록 하였고 말머리가 궁궐을 향해 있다는 기별을 받아 욱에게 전달한다.
욱은 처서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고 처서 밖은 무사들로 가득했다.
알고 보니 그 그림자는 중종을 호위하기 위해 배치된 무사들이었고 우두머리가 한 말들은 욱의 귀에만 들렸던 환청이었다.
이 날이 바로 중종반정 당일이었고 채경의 만류가 없었다면 중종은 지레 자결하고 말았을 것이다.
[현실]
꿈에서 깬 욱은 아직 자고 있는 해주를 뒤로 하고 조용히 방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내려가 바로 침대에 눕는다.
다시 꿈을 이어서 꿀 수 있을까 싶어서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참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였고 끝내 잠이 들고 나서도 그 꿈을 다시 꾸지는 못했다.
계속해서 이 역의 시점으로 꿈을 꾸기 시작한 욱
과연 이 꿈들은 전생 속 이 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걸까, 아니면 그저 이 역의 책을 본 후 잔상이 남아서 무의식 속에 꾸게 된 꿈에 불과한 걸까.
해주에게 확인해 이 꿈이 전생에 일어났던 일이라면 전생일 것이고,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면 그냥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