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함덕 ‘라플라주 카페’에 왔어. 저기 앞에 보이는 ‘델문도’ 커피숍은 자리도 없는데 여긴 왜 손님이 하나도 없을까? 뷰도 이렇게 좋은데 말이야.
그런 걸 보면 결과라는 게 노력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닌가 봐. 적당한 운이 따라줘야 하는 법인가 봐.
카페 델문도
어제는 도착하자마자 에벤에셀호텔 1층 ‘버거 307’에서 생전 내 돈 내고 먹지도 않았던 윙과 감자튀김에 제주에일 2잔과 기네스 1병을 마시고, 쓰던 소설에 약간의 살을 붙였어. 무슨 소설이냐고? 쓰면서 내가 킥킥대는 소설이지.
버거 307
숙소로 돌아와 2시간쯤 자다가 다시 밥을 먹으러 나갔어.
에벤에셀 호텔 오션뷰룸
정확히 말하자면 밥이라기보단 술이지? 3박 4일 여행에서 첫날밤을 이렇게 보낼 수 없잖아. 내 술을 먹다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포기 못하지.
숙소 3분 거리 ‘오가네 전복 설렁탕집’에서 설렁탕 한 그릇에 한라산 16도짜리와 카스를 섞어 마셨지.
사실 제주에 왔으니 흑돼지 구이도 먹고 싶었고, 갈치회나 고등어회, 한치회나 딱새우회도 먹고 싶었지만 입 짧은 햇님이가 혼자 여행하며 얼마나 먹겠어? 할 수 없이 늘 국밥이나 탕이지. 낮에 마신 술이 해독이 덜 된 건지 쓰더라.
오가네 전복 설렁탕
그쯤하고 숙소로 돌아와 ‘나는 어떤 죽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를 마저 읽었어.
샤워 후 적당히 리뷰를 쓰고, 침대에 자려고 누었는데 새벽이 밝도록 잠이 오질 않는 거야. 미치겠더라.
술을 마시는 첫 번째 이유가 꿀잠인데,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이 대다수 대답한 이유래.) 졸릴 때까지 마시지 않고 적당히 마시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난 거야. 역시 술이란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마셔야 한다는 교훈?
어제 낮술을 마시면서 한 다짐은 일찍 자고 새벽에 함덕 해변을 산책하고 스타벅스에 가서 아침에 소설을 쓰자는 거였는데, 밤새 잠을 설친 탓에 정오까지 잠만 쿨쿨 잤어. 그렇게 나의 여행 중 하루 반이 순삭 한 거야. 한 가지 다행인 건 샤워를 하고 자서 아침에 챙기는 시간을 조금 아꼈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나에게 준 미션 중 하나인 ‘귤다방’을 방문하기로 했어.
귤다방은 귤을 파는 농장이면서 책을 파는 책방이기도 해. 몇 번 뵙기로 했다가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이번엔 꼭 가보고 싶었거든.
그전에 해장을 해야 했어서 함덕 주변을 서성이다가 ‘함덕 고등어 쌈밥’이란 곳에 들어갔어. 해변이 바로 앞이라 손님이 가득해서 1인을 받아줄까 했는데 다행히 받아주었고, 무척이나 친절하더라.
바닷가가 바로 보이는 테이블을 혼자 쓰는 것이 마음이 쓰여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지. 18000원짜리 고등어조림. 한입을 먹고 드는 생각은 아 내가 이걸 먹으려고 여기 왔구나. 23년 전 풀패키지 신혼여행 때 가이드 손에 이끌려 맛집이라고 같던 그곳으로 날 데려다 놓았어.
그리고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이 좋은 안주에 술을 못 먹다니...’ 안타까움도 있었지.
식사 후 ‘귤다방’에 가서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장하고 싶은 책(이미 읽었지만 에디션으로 나온 책)과 선물하고 싶은 굿즈를 사고,염소랑 토끼랑 닭이랑 개도 보았어. 앗 오리도!
난 동물을 무척이나 무서워하는 인간인데 대표님 손에 이끌려 구경했다는. 그녀가 날 막아줄 거란 믿음... 하하하. 무사히 돌아왔어. 이렇게 쓰고 있잖아.
단편을 써서 투고를 해둔 상태야. 책방에서 대표님과 대화하는 사이에 이메일이 도착해서 슬쩍 보니 **출판사 더라. 두근대며 클릭을 해보니 ‘저희 출판사와 색깔이 맞지 않아 반려합니다.’라는 내용이었어. 그런데 예상했던 결과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고, 나에게 필요한 감정이 막 솟아나는 기분이 들더라고.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랄까?
갑자기 술도 막 당기고, 뭔가 쓰면 잘 써질 것 같고. 난 참 그러고 보니 ‘쓴 걸’ 좋아해. 글쓰기, 책 읽기, 술 마시기... 이게 내 삶의 전부인데 자세히 보니 다 쓴 거잖아.
하긴 인생이 원래 쓰니까 맞는 말이긴 하겠다.
이런 기분이면 사람이 없어도 되겠다. 혼자서는 소주 1병도 못 마시는 사람이 둘이서는 소주 3병도 더 마신다잖아. 혼자서는 술이 잘 안 들어가거든. 여럿이 있으면 몇 배로 술이 술술 들어가지.
그리고 그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또 달라지지. 좋은 사람, 편안 사람, 웃기는 사람이면 술이 쭉쭉 들어가고, 시간도 줄줄 흐르고 그 반대는 반대로.
장일호의 ‘슬픔의 방문’을 읽는 중이야. 포항여행 때 아스아쿠(아무튼 스콘, 아무튼 쿠키) 책방에서 구입한 책인데, 책 속의 책 한 구절이 어찌나 내 맘 같은지.
-술 가운데서도 맥주는 내게 365일 ‘제철 음식’이다. 식사 메뉴를 놓고 고뇌의 시간이 찾아오면 일단 맥주부터 주문해 한 잔 마셨다. 알코올이 빈 속을 통과하는 동안 ‘오늘의 메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내가 거절하지 못하는 말은 “맥주 한잔하자.”이며, 당연히 한 잔은 한 잔으로 끝나지 않는다. (캐럴라인 냅_드링킹, 나무처럼 2009)
오늘은 고등어로 시작해 고등어로 끝을 볼 작정이니 고등어회를 먹으러 ‘훈남 횟집’을 가 볼 생각이야. 포항 여행 때는 ‘미남 포차’를 갔으니 제주 여행 때는 훈남 횟집을 가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결국 갔냐고? 역시 ‘훈남’ 이란 이름답게 웨이팅이 길어서 패스. 안달난 술 강아지한테 기다리라면 기다리겠냐고. 바로 그 아래 ‘바닷골’ 포차로 향했으.
(고등어회 못먹...ㅡㅡ;;)
역시 제주에 왔으니 한라산과 카스 그리고 제주에만 있다는 특별한 바닷골 하이볼까지 마셔주고, 그냥 잤냐고?
숙소 1층 편의점이 유혹하잖아. 기네스 4캔 12000원! 그 옆에 나란히 ‘망고레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