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공휴일, 오전, 오후, 늦은 밤, 봄, 여름, 가을, 겨울... 나의 술자리에는 원인이 있고, 사연이 있고, 근거가 있음을 말이야.
2024년 장마는 유독 긴 듯.
보슬보슬도 아니고 굵직하게 내리는 비를 보며 잿빛 하늘을 한 번 노려보겠지.
‘뭐가 그리 구슬픈 거야?’
그런 날이면 바로 달려가는 곳이 바로 <전집>이야. 앗! 여기서 전집이란 세계문학전집이 아니고 해물파전, 부추전, 명태전이 있는 전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비와 막걸리. 어찌 이 둘을 떼어 낼 수 있단 말인가? 후훗.
참고로 막걸리는 대낮에 두두둑 빗물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마시면 금상첨화라.
비 오는 날! 어찌 당신 나와 막걸리 한 잔 할 텐가? 환영한다!
(참고로 본인은 막걸리 잘 못 마신다)
날씨에 따라 마시는 술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너는 아는가?
무더위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땅이 바싹바싹 마르는데, 요것이 땅만 마르는 게 아니라 나의 입도 덩달아 마르니... 오후 2시가 넘어갈 때 즈음이면 하얀 거품이 4분의 1쯤 덮인 시원한 얼음맥주 생각이 간절하지. 목구멍이 찢어질 듯 차가운 생맥을 벌컥벌컥 마실 때면 양쪽 머리 위가 지끈지끈해지는데 그 마저 짜릿하다는 걸. 첫 잔을 한 방에 다 마시고 쾅 소리가 나도록 테이블에 내려놓는 순간의 성취감, 만족감, 행복감을 어찌 형용할 수 있으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서사 불가.
거울을 보면 입가에 하얀 거품이 묻어 있을 게야. 그러면 나는 식지 않은 혓바닥으로 남은 거품을 핥아먹어야지.
그러고 나서 재빨리 할 일은? 끊기기 전에 소리 질러!
“여기요! 생맥 한 잔 추가요!”
그러면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엔 무엇을 먹느냐고? 그야 이쯤에서 와인이 빠질 수 없지. 날씨가 서늘해지면 회, 해산물의 계절 아닌가? 회나 해산물엔 소주가 진리임을 확연히 알고 있으나, 가끔 주제넘게 쇼비뇽 블랑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임을 잊지 말자고. 어떨 때는 낙엽의 빛을 담은 스테이크에 카베르네 소비뇽을 마시는 것도 좋겠어.
참고로 내 주량은 와인 750ml 한 병이니 그 이상은 못 마셔! 거기에 기분이 좋을 때에는 하이볼이나 기네스 1~2잔 정도까진 가능해.
자 이제 다 왔어. 하얀 눈이 펑펑 오는 날이야. 그런 날이면 우리 굴찜이나 먹으러 갈까? 내가 잘 아는 집이 있어. 커다란 솥에 밤새 먹고도 남을 굴을 가득 담아 쪄 먹을 수 있는 곳이야. 도톰한 작업용 장갑을 끼고, 뜨거운 굴껍데기 사이에 칼을 쑤셔 넣고 요리조리 돌리면 껍질이 까질 거야. 그러면 한쪽 굴껍데기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어내고 있는 촉촉하고 보드라운 녀석을 보게 되겠지. 소주잔에 차가운 소주를 한가득 붓고 한 입에 탁 털어 넣어. 쓴맛이 입안을 채우기 전에 방금 전에 까놓은 굴 한 점을 씹으면!??
별이 반짝 보일 거야! 그 첫맛을 어떻게 잊겠어?
여름에서 시작한 술 이야기가 어느덧 겨울을 지나 봄으로 왔네. 아직은 쌀쌀한 봄날이라면 뜨끈한 사케 한 잔 어떨지? 냉이나물이랑 버섯, 배추, 미나리, 청경채, 파, 호박 썰어 넣고, 펄펄 끓는 물에 된장 한 숟갈 풀어서 봄주꾸미 샤브샤브 한 입도 좋고?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군!
이래서 내가 술을 못 끊지. 나의 술친구! 언제 우리 만날까?
1차는 내가 쏠 테니 2차는 당신이 쏠 거지?
아아아 난 말이야. 술 마시다가 갑자기 술 좀 깨자고 커피숍 가는 그런 인간들 질색이니까 중간에 끊지 말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