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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송이 Oct 22. 2024

출산이 고통의 끝일 줄 알았건만

아픈 게 정상

정신을 차리고 보니 퇴원하는 날이다.


“축하해. 몸은 괜찮아? 아기, 엄마 모두 건강하지? 남편도?“ ”몸조리는 꼭 잘해야 해!“ “울적할 때 연락해. 꼭 그런 날이 올거야.” “엄마가 행복한 게 먼저야. 알지?” “언니, 사랑해!”


새 새명 탄생의 소식이 다른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그 덕에 사랑 고백까지 받다니. 행복함에 빠져 뭉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연분만 후 2박 3일 입원해 있는 동안 어찌나 컨디션이 좋은 지 출산의 대가를 다 치른 건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혈압도 정상, 열도 없고, 오로 배출도 잘되고, 변비도 없고, 기분도 좋고! 출산 직후 확인해야 할 건강 상태가 일사천리로 해결되니 마음이 편했다.


오산이었다. 조리원으로 옮기자마자 아프기 시작했다. 입소할 때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산모님, 지금까지는 컨디션 괜찮았어도 슬슬 몸이 아파올 거예요. 출산은 밥 안 먹고, 물 안 마시고, 잠 안자고 밤새 달린 사람이랑 같은 체력 소모거든요. 아픈 게 정상이예요.” 속으로 살짝 콧방귀를 뀌었는데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걷거나 잡기 어려울 정도로 손발 부종이 생겼다. 임신기에 감쪽같이 사라졌던 두통이 지끈지끈 올라왔다. 수액 꽂았던 팔과 힘주기로 만들어진 멍도 시퍼렇게 나타났다. 아기를 별로 안지도 않았는데 목과 어깨에 근육통이 느껴졌고, 배에 가스가 차 방귀가 시도때도 없이 나왔다. 아기는 3.09kg이었는데 몸무게는 줄지도 않았다. 나온 뱃살도 그대로 남아 출렁거렸다. 회음부 절개도 안했는데 왜 이렇게 아픈건지 어기적 어기적 걷고 안고 설 수 밖에 없었다.


“뭐지. 진짜 원장님 말대로잖아!”


그동안 옥시토신 호르몬 덕에 통증도 덜 느껴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 나와 기분도 좋았던 거다. 어쩐지 26시간 잠 못 자고 꼬박 진통하고 이른 아침 출산 했는데도 그날 새벽 1시까지 남편과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던 게 이상하긴 했다. 호르몬 정말 무섭다. ‘윽. 그럼 이제 시작인건가. 얼마나 아프려나.’ 겁이 났다. 계속해서 잠을 잤고, 잠자는 동안 문 앞에 놓여진 식사를 뒤늦게 가져다 먹기를 반복하면 금세 저녁이 되었다.


뻐근함이라도 풀고 싶어서 산후 요가 동영상을 켰다. 마침 요가 선생님께서 듣고 싶은 말을 해주시는 게 아닌가.


“출산 후에는 아가를 품기 위해 변했던 뼈와 장기들이 제자리를 찾고, 이완되었던 근육들이 다시 수축하고, 노폐물이 빠져나가며 회복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필요합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몸을 움직여주세요. 회복에 도움이 될거예요.” 아픈 게 겁이나 위축돼있던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임신기의 몸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플 수 밖에 없는 과정이다. 아프지만 여전히 건강한 상태인 것이다.


증상을 긍정적인 신호로 여기고 몸을 움직여 보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환기를 시키며 봄내음을 즐기고, 가벼운 요가 동작을 시작했다. 반신욕을 하며 그동안 흘리지 못했던 땀을 시원하게 흘리고, 삼시세끼 건강하게 차려진 밥을 먹었다. 낮잠을 실컷 자고, 남편 마사지를 즐기며 뭉친 근육을 슬슬 풀어냈다. 마음 건강을 위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대신 글을 적었다.


조리원 퇴소 할 때 쯤 되니 부기도 조금씩 빠져 손가락과 발가락 움직임이 편해졌다. 두통도 줄고, 방귀도 멈췄다. 여전히 골반은 삐그덕 거리고, 뱃살인 탄력없이 늘어져있고, 회음부가 너무 아프고, 체력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느 부분이라도 회복되고 있음을 느끼니 조급함도 사라졌다. 짧게는 산욕기 6주, 임신부터 1년 흐른 100일, 길게는 6개월까지 산후조리에 최대한 힘쓰겠다고 결심을 하며 집에 돌아왔다.


임신, 출산이 처음인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말과 정보, 광고가 너무 많다. 모두가 최악을 겪는 것 처럼 대비해야한다고 강요한다. 자극적이고, 일반화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나 역시도 그런 내용에 휘둘리고, 신경 쓰이는 시기가 있었다. 그 뒤로 인터넷과 유튜브 대신 의사, 간호사, 전문가가 만든 책, 출산 경험이 있는 친구들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했다. 그렇게 제대로 알고 나면 몸과 마음의 변화들이 이해가 되었다.


출산한 엄마의 회복에 가장 필요한 건 자연적인 몸의 되돌아감을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스스로를 건강하게 돌볼 수 있는 사랑이다. 아픈 게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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