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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송이 Oct 18. 2024

미안해 대신 사랑해라고 할 걸

아기가 태어나던 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힘들 줄만 알았던 임신기가 행복으로 가득 찼다. 아쉬움 없을 정도로 잘 보내서 ‘아기야. 이제 그만 나와!’ 했는데 분만예정일을 넘기고도 며칠 더 뱃속에 있었다. 그동안 아기 만나는 첫 순간에 어떻게 인사할까 미리 고민했다. 고심 끝에 사랑을 가득 담아 “열매야, 열매야~ 안녕? 엄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고칼로리 음식을 먹으며 언제라도 힘줄 준비를 했다. 밤 열 시쯤 동네 치킨집에서 바삭하고 고소한 치킨을 먹었다. 사장님이 만삭인 나를 보고 “우리 치킨 먹고 내일 아기 낳으러 가는 거 아니야?”라고 인사하셨는데 사실이 되었다.


갑자기 새벽에 이슬이 비치고 가진통이 시작되었다. 자궁문이 7cm가 열리기까지 20시간을 견디고 병원에 가 분만실에 누웠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고통의 강도에 잠깐씩 의식을 잃는 듯했다. 임신기 내내 요가도 하고, 유산소 운동으로 호흡 단련도 해두었지만 한계였다. 그때부터 혼자서 견딜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 와중에 너무 아파서 나만큼 아기가 아픈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숨 쉬고. 숨. 힘주기 계속해야 해요. 아기 힘들어요. 그래야 아기 얼른 나와요.” 간호사의 말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단호한 간호사와 다정한 남편이 이끌어주는 대로 엉망진창이 된 호흡을 다시 되찾으려 용을 썼고, 지용의 팔에 상체를 바짝 기대어 있는 힘껏 양다리를 붙잡고 힘을 줬다.


1시간쯤 지났을까. 자꾸 힘이 풀려 바둥거리는 나를 바른 자세로 붙들며 힘주기 연습을 돕던 남편의 땀방울이 내 얼굴에 툭 하고 떨어졌다. 살아있다는 신호같았다. ‘이렇게 아프다고? 정말 이러다 죽겠네.’ 싶다가 ‘이렇게 아파도 안 죽는다고?‘라는 의문이 들쯤 의사가 마지막이라며 하나, 둘, 셋을 외쳤다. “끄으으으으응!” 밖으로 지르고 싶은 소리를 삼켜 지르고 나니 아기가 몸속에서 쑤욱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앙- 아앙- 아앙” 열매의 여린 첫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기가 들어 올려지는 모습에서 너무도 작은 발바닥을 봤다. 곧바로 아기와 아빠가 먼저 인사했다. “안뇨옹~열매야~아빠야.” 빽빽 우는 아기에게 노래 부르듯 인사하는 남편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고 안도했다.


분만이 모두 끝나고 후처치를 하는 동안 계속 신음했다. 그 순간 간호사가 아주 작은 아기를 품에 안겨주었다. 여전히 정신이 없어 웃는 얼굴은커녕 우리 둘 다 얼굴을 찌푸릴 수 있는 데로 찌푸리고 가장 못생긴 채로 마주했다. 일단 안겨진 팔로 열매의 어딘가를 토닥였다. “미안해. 미안해. 힘들었지. 열매 미안해.”


생애 가장 따뜻하고 뭉클했던 포옹을 마친 후 1시간 정도 깊은 잠에 들었다 깼다. 서툴렀던 나 때문에 열매와 지용이 너무 고생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만큼 녹초가 되어 잠든 남편을 보니 그 마음이 더 커졌다. “송이, 송이만큼 고생한 사람 없어. 잘했어. 잘했어. 진짜 잘했어.” 의료진도 힘을 잘 줘서 아기가 다친 곳 없이 예쁘고 건강하게 나왔다며 축하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잠깐동안 가졌던 죄책감과 미안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 미안해말고 사랑해라고 할걸.

열매는 많은 사람이 기도해 준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기의 길을 잘 찾아 나왔다. 오랜 시간 진통했지만 잘 열린 자궁문 덕분에 엄마도 아기도 상한 곳 없이 건강한 출산할 수 있었다. 화룡점정 남편의 기가 막힌 협력으로 해냈다. 세 가족 첫 만남 미션 대성공이다.


아기, 엄마, 아빠. 모두 처음 맞이하는 인생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날이 시작되었다. 조급한 마음 대신 태아를 품고 수없이 연습했던 방법으로 숨을 가다듬으며 미안해보다 사랑해라고 말하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사랑해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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