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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마시는 커피의 의미

나도 결국 쇼핑몰에서 커피를 마신다.

by 한송이

"벌써 다 마셨...?"


말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웃는다. 푹푹 찌는 더위에 냉수 마시듯 아이스커피를 들이킨다. 보통 애기엄마들은 음료를 순식간에 다 마셔버리거나 얼음이 녹을 때까지 마시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별 수 없다.


커피가 사라진 텅 빈 잔에는 투명한 얼음만 남아 반짝인다.


빈 잔에 우리는 좋은 마음을 채운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사실 "알지? 알지?"만해도 다 아는 이야기면서 아기가 잡아당기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술술 풀어 말한다.


이 고생을 나만 알고, 나만 그런 거라 생각해서 풀 죽었던 마음이 다시 일어나고, 어두웠던 마음 구석에 다시 빛이 닿는다.


일 년에 두세 번 갈까 말까 하던 쇼핑몰에 간다. 핫플, 진짜 맛집, 감성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그런 곳엔 대부분 기저귀갈이대와 전자레인지가 없다. 아기의 불편함을 편하게 대처할 수 있는 곳일수록 우리는 우리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진동벨이 울리고 반가운 커피가 내 앞에 놓인다. 카페인을 들이키며 번쩍 몸이 깨어나는 걸 느낀다. 정신이 차려진다. 이 상태는 일시적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찰나에 서로를 돌보고, 나를 돌볼 테니.


하품은 자꾸 나오고 달아날 줄 모르는 피로들이 쌓여 여전히 천근만근 피곤한 몸이지만 발걸음이 가볍고 입가에 웃음이 남는다.


아기만 돌보며 집에 있다가 커피를 마시려면 사러 가야 한다. 아기를 향한 수고만 하다 나를 위한 수고를 하는 것이다. 사러 가는 동안, 돌아오며 마시는 동안 캬-하며 긴장도 풀어보고, 숨을 돌리고, 하늘도 보고, 나를 환기한다.


요즘 내가 마시는 커피는 이런 커피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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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