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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민석 Sep 14. 2023

선과 악, 그 모호한 두 존재에 관하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제 굴을 먹었다. 


 괴이한 겉껍질을 가른 그대로 내어진 석화(石花)라는 명칭이 더 그럴듯한 음식이었다. 몇 사람이 한두 점 집어먹으니 남은 패각의 양이 상당했다. 따개비와 퇴적물들이 붙어있는 모양이 퍽 해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들은 언제부터 저 위에 터를 잡았을까. 한 몸처럼 엉켜있는 굴과 따개비에게서 다른 선과 악을 보았다.


 선과 악, 긍정과 부정, 기쁨과 슬픔 따위의 감정들은 좌에서 우로 긴 선의 끝점같이 느껴진다. 구로 따지면 대척점이고, 사람으로 따지면 너와 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들은 끈적이게 엉켜져 있다.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사무치게 얽혀있다.


 같은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선이고 악이다. 나에게는 기쁨이 너에게는 슬픔이다. 누군가의 일상을 파괴하는 약이 환자에게는 멈출 수 없는 고통을 멎게 해 준다. 씻을 수 없는 상처는 다시 일어날 힘이 되기도 한다. 미련하고 이기적인 우리가 어떻게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선과 악을 구분 짓은 우리는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그것에 대해 논한 전국시대의 학자들이 있었다. 성선과 성악이 그것이다. 맹자가 주창한 성선설에 의하면 인간이 선하기에 올바른 교육으로 선한 성품대로 살아가야 한다. 반면 순자가 주창한 성악설은 인간의 품성은 악하기에 올바른 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수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사람의 본성에 주목하지 않았다. 올바른 교육에 대해 생각했다. 두 철학자가 말한 내용의 핵심은 결국 올바른 교육과 수양이다. 그것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가 본래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사회와 엇나가게 된다는 말이다.


 선과 악이 교육으로 인해 해결된다면, 선과 악은 인류가 정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내었던 수만 동안 그렇게 정해졌다. 나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수많은 세월 속에서 선과 악은 그렇게 구분된 것뿐이다. 그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을 테니까.


 결국 선과 악은 현상이다. 사상이고, 의식이다. 패각 위에 붙은 저 따개비와 굴의 모호한 관계처럼 선과 악은, 긍정과 부정은, 기쁨과 슬픔은 현상이다.

 그것이 현상이기에 그 중심은 누구도 볼 수 없다. 그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지각할 뿐이다. 나약과 미련의 굴레 속에서 신음하는 인류는 선과 악에 대해 감히 선 그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구분 짓는 행위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나의 선이 그에게 악일뿐더러, 그의 악이 나에게 선이 될 수도 있다. 광활한 현상 속에서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그러니 뻗은 손가락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가 악이라며 구시렁댈 권리는 나에게 없다. 그러나 그는 그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언정, 판단할 수 없는 존재다. 인류가 이 땅에서 벌려놓은 세상은 단편적인 지식으로 판단하기에 너무나도 혼란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상 속에서 인류는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리고 이상적 방향성을 탐닉하고자 하는 욕구 속에서 우리는 그곳으로 향할 수 있다. 그것이 ‘선’이라고 규정된 어떠한 방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공생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의 옛 세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결국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의 일부분을 가져온다. 삶은 슬픔보다 사랑을 더 귀히 여기지만, 때로는 슬픔이 사랑보다 더 소중할 때도 있다.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고민하지 말고 그저 살아내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야 할 것이다. 대부분 악보다 선을 더 귀히 여기지만, 때로는 악이 선보다 더 소중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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