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른 사람도 모르는 사이 눌리고 긁는 사람도 모르는 사이 긁힌다. 누가 긁고 누가 긁혔을까?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거즈로 덮어 가렸을 뿐인데 아픈 줄 모르고 꾹 누른다. 붉은 피가 배어 나와 거즈에 스며들다 통증이 가라앉고 검은 얼룩이 남는다.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겨우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내려앉을 때쯤이면 아팠나 싶을 정도로 가렵다. 그렇게 아픔과 상처가 진행되는 사이 누군가 상처를 건드려 겨우 앉은 딱지를 떼어낸다. 채 아물지 못한 상처는 다시 통증이 되고 엷게 내려앉던 피부 사이로 피가 비집고 나온다. 아프다.
무심결에 건드리는 상처는 쓰림을 동반하고 건드린 사람을 나무랄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다. 나만이 아는 그 상처를 네가 건드렸노라 말하기는 어쩐지 어색하다. 그렇게 통증과 고통은 사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누른 사람의 문제도 긁은 사람의 문제도 아닌데 사람들은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고의가 아님을 알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원망의 대상이 필요해 보인다.
근원을 들여다봐야 한다. 시작점을 찾아서 진지해져야 한다. 무엇이 이렇게 큰 상처를 남겼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와 회복되지 않고 잔잔히 아린 고통의 이유를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마땅할 얼굴의 근육들이 이유도 없이 굳어지고 웃음기가 사라진 자신을 발견하는 날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아프고 힘들게 했는지...
아픈 곳을 찔렸다. 그래서 발작버튼이 눌렸다. 화가 난다. 자신을 긁어대는 것들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타인의 사소한 행동과 말이 주요인을 아닐 것이다. 대부분 자신의 행복이 차고 넘칠 때 사람들은 너그러워지고 날이 무뎌지니까... 스스로 충만하지 못한 허기를 점검해야 한다.
서로 아플 것 같은 시간은 홀로 있는 시간에 자신과 진심으로 마주하는 편이 안전할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내가 죽도록 아픈 그날 상대방도 온몸의 신경이 날카로워 부딪히는 기가 막힌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배가 적당히 부르고 마음이 따스한 날, 원했던 일들이 아슬아슬한 그 길을 무사히 지났을 때 저절로 나오는 미소와 안도의 한숨 끝에 가득 차 오르는 인류애를 느꼈을 것이다.
삶이 어린아이처럼 한 인간의 내면을 흔들고 시험할 때 그것을 알아차린다면 이미 어른이 된 것일 게다. 피가 배어 나온다. 너는 모른다. 그래서 꾹 눌러 날 아프게 했을 뿐이고.... 아물지 않은 상처에 예고 없는 모래바람이 덮친다. 쓰라림을 참고 물로 씻어낸다. 바람을 원망할 순 없다. 바람이 불었을 뿐.... 바람은 원래 그냥 부는 것이고 스쳐 지나감이 속성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타인과의 관계도 비 개인 맑은 날처럼 선명해지리라. 바람은 지나가고 어둠은 밝아지고 소란은 고요 해질 테니 말이다.
https://youtu.be/FIJpCghLTG8?si=OZV035saD6E-rBF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