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요일의 이야기/무엇으로 채울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by 하루하늘HaruHaneul

해가 있어도 습도가 가시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눅눅함 사이에서 식물들이 제 때를 만난 듯 무성하게 성장 중이다. 투명했던 여린 잎들이 녹색으로 변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 빈 공간을 가득 메운다. 어느새 꽉 들어차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정원을 내려다보며 숲 속에 있는듯한 착각을 한다. 창 밖에 가득한 초록에 눈이 시원하다. 뽀송한 공간에서 창문을 연다. 밤사이 모아둔 습도가 열린 창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다. 청소와 환기가 끝나면 다시 닫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살랑이는 나뭇잎 끝에 아직도 대롱거리는 물방울을 쳐다본다. 눈에 보이는 물방울과 대기 중에 가득한 보이지 않는 물방울 그리고 그 습도가 얼굴로 쏟아진다. 정신을 차리자. 외출을 앞둔 마음이 바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과 함께하는 점심나들이. 평소에 하지 않는 일들을 계획한다. 낯선 장소에 가서 점심을 먹고 일주일에 하루는 식후 디저트도 먹는다. 조심해야 할 것들로부터 적당한 탈출의 시간이다.


몇 년쯤 됐을까...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해서 이름 없는 날에 만나 기억을 한 켜씩 쌓아가는 일. 혹자는 너무 자주가 아니냐며 또 누군가는 굳이라는 표현도 하지만 부모만 자식을 모르는 게 아니다. 자식도 부모를 잘 모른다. 가족이라 모두 다 잘 안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지만 아닌 거다. 아닌 걸 알게 된 거다.


낯선 공간과 익숙하지 않음을 나누고 흔들리는 나무들과 꽃들을 보며 걷고 덥지만 따뜻한 음료를 앞에 두고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물리적 거리와 지난 시절의 무심함이 만들어낸 텅 빈 공간을 그렇게 아주 조금씩 메우는 일이 결국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모진 병마가 시간의 유한함을 알려주고 날 선 감정들을 무디게 도왔다.


어린 조카를 두고 서른이 갓 넘은 오빠가 일상이 시작되던 아침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모든 황망함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어느 자식인들 귀하지 않으련만 예전의 장남은 지금보다 그 무게가 더했던 것 같다. 잠시지만 지인들은 장손의 결혼식 대신 아버지의 부고를 기다렸었다. 그런 기다림이 무색하게 아버지는 걸어서 식장에 들어와 손님을 맞았고 장남의 아들이 예쁜 짝꿍과 혼례를 치렀다. 눈물이 쏟아질까 봐 미리 겁을 먹었었다. 다행히 밀어닥친 손님들 덕분에 올라오는 감정대신 분주함이 눈물을 막아버렸다. 너무 젊은 새언니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미혼인 내가 오해를 마다하지 않고 손을 꼭 잡고 데리고 다니던 아이다. 30년이 훌쩍 지났고 아이는 잘 자랐고 언니는 아직도 혼자다. 고맙다는 말로는 다하지 못할 감정이다.


그렇게 모두 가슴에 멍울을 안고 허무를 달래며 전쟁 같은 긴 시간을 보냈었다. 장남을 잃은 부모님은 백발노인이 되었고 어린 손자는 어른이 됐다. 아빠를 잃은 자식 같은 조카가 가정을 이루는 일이 너무 좋아서 울음은 쏙 들어갔다. 평생 드러내지도 못하고 아리듯 비어있던 마음이 조금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때때로 솟아오르던 그 슬픔이 아주 희미하게 옅어지는 중이다. 아파도 시간은 흐르고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간다. 나이가 든다는 게 반가운 지점이다.


그럼에도 이유 모를 공허함이 가슴속에 파고들 때 틀어막을 무언가를 생각해 본다.

주위를 둘러본다. 막을 수 있을까...


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늦기 전에 시작한 일이다. 살아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감정을 살펴보는 일. 어색함과 불편함, 때로는 서운함을 희석시켜 사랑으로 메우는 일. 비워지는 마음만큼, 비워내는 공간만큼 채워지는 넉넉함의 기적. 사랑과 감사를 기억하는 5월이 지고 있다.








https://youtu.be/iKzRIweSBLA?si=GO6_YW4PcK6BgBu8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2화수요일의 이야기/눌리고 긁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