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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이야기/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수국이 지천이다

by 하루하늘HaruHaneul


미스 김 라일락 향기를 따라 걷던 그 길에 하얀 수국이 한창이다. 어둠 속 코 끝을 따라가던 길이 눈부신 수국으로 덮였다. 성하의 여름에 시들지 않는 꽃이 바로 너였구나.


어느 순간 도시의 구석구석엔 꽃들이 가득하다. 더위에 지쳐 쓰러져간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스스로 물을 잔뜩 머금고 이 더위를 견디는 꽃도 있더라. 습기를 좋아하고 머금는 꽃이라니 아열대를 방불케 하는 우리나라 여름에 맞는 수종인 모양이다.


낮에는 산책을 엄두도 낼 수 없으니 저녁에 해가 진 틈에 걷다 보면 향기에 이끌려 가게 되는 길이 있다. 그곳엔 어김없이 하얀 수국이 흐드러져있고 더위를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향기가 한가득이다. 수국의 향기로 위로받는 여름이라니 고급지다. 자연의 향기가 좋다. 비 온 뒤 나는 흙냄새도 정원 전지 후에 나는 풀냄새도 고요한 물냄새도 모두 마음에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태양에 타들어간 때 이른 갈색 나뭇잎이 뒹구는 사이 계절이 바뀌고 있다. 단풍이 드는 것도 낙엽이 지는 것도 아닌 그저 여름에 지쳐 떨어진 바스락거리는 나뭇잎들을 보며 문득 너흰 물을 품는 기술을 배우지 못했구나 싶은 생각이 스친다. 물을 품는 법도 때가 되면 자연히 떨어지는 것도 모두 저마다의 살아가는 방법이니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할 필요도 없는데 어리석은 인간이 한마디 껴든다.


달이 차면 기울고 때가 되면 공기도 바뀌는 법. 아주 천천히 미묘하게 계절이 바뀌는 중이다. 서두르다 도망갈까 봐 티 내지 않고 관망하는 중이다. 너무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작열하는 시간이 좀 누그러들기를 마음속으로 비는 중이다. 이제 그만하라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사이 여름이 지고 있다. 조용히 흔들리는 나뭇잎의 작은 웃음소리가 파란 하늘을 간지럽히며 마지막 여름을 매미와 나누고 있다.


찬물이 미지근하다. 아무리 수선을 떨어도 이 시간은 지날 테고 바삭거리는 가을이 오면 언제그랬냐는듯이 이 습기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습도가 파고들어 왕성하게 번식하는 식물들을 바라보며 나도 습도가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번식도 왕성도 이제는 다 옛말이지만 그래도 부서지는 바스락 거림보다는 이 촉촉함이 좋다. 물을 좋아하니 물고기가 아니었나 생각하며 어이없는 상상을 더해본다.


전환기가 예고된 가을이라는 시간이 다가온다.은근 긴장 된다. 매일의 일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다른 모습으로 적응해야 할까? 자연에서 배운다. 자연처럼 살면 된다. 습하면 물을 품고 건조하면 알아서 떨어지고 힘 빼고 몸을 맡겨보자. 다른 장이 열린다고 모두 난이도가 상승하는 건 아닐 것이다. 다시 한번 시작버튼을 눌러보자. 여름이 뒤태를 보이는 사이 가을이 오고 있다. 또 다른 챕터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생각을 덜어내고 힘을 빼보자. 호흡이 길어진다. 좋은 징조다.








https://youtu.be/r5yaoMjaAmE?si=4v3jbAL0L2v5F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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