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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Jan 03. 2023

사랑은 고령 딸기다. 틀림없다.

왜 일까?

사랑은 고령 딸기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은 필히 새기듯 적어야 한다

오늘 나의 사랑은 고령 딸기다. 틀림없다


지금 누군가는 웃겠지만  끝까지 읽는다면

마지막 문장에서 무거워진 열매처럼 끄덕일 것이다.


사실 고령은 내 고향이고, 심지어 가까운 친척이 딸기 농사를 지었다. 6살 때부터 딸기 하우스에서 일을 돕기도 했으니 나만큼 딸기향과 맛에 민감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 적성을 살려 소싯적에는 꼭지가 매끈하고 광택이 도는 가장 맛있는 놈들을 딱딱 집어서 해치우는 게 내 특기였다.. 보기만 해도 어느 딸기가 제일 맛난 놈인지 단박에 판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학업을 위해 난 일찍부터 구미와 서울로 유학생활을 했다. 특히 서울에 있을 때가 문제였다. 처음 마트에서 큰 마음먹고 비싼 딸기를 사서 먹었다. 당도 최고라고 했다. 걔 중에서 제일 잘 생긴 애로 야무지게 골라서 왔다.

그리곤 한입. 어? 뭐지? 왜 이리 밍밍하지?

이 느낌은 실제 고령 딸기를 먹지 않으신 분들은 모를 수도 있다. 이 느낌을 어떻게 여러분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아. 오렌지주스 500mm를 사서 물 75mm 정도를 타서 마신다면 뭔가 100프로 오렌지 주스는 맞는데 애매한 부족함이 느껴질 것이다. 처음부터 그 맛에 익숙하면 모르겠지만 이미 희석 전 주스를 마신 우리는 주스 양이 늘어도 그렇 안 먹는다. 그렇게는 못 먹는다.

맛없으니까


최고의 불운은 최고를 경험한 자신인가?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를  타지에서 맛볼 수 없었다. 심지어 고령 딸기, 쌍림 딸기라고 적힌 타지에서 산 딸기들도 매한가지였다.

난 고령에 사는 가족과 이 문제에 대해 심각히 이야기했다. 아마 딸기의 보관성과 유통과정의 문제인 것 같다. 당시 친척집에서는 내가 먹던 상태 좋은 딸기는 일본으로 거진 수출한다 했다. 현재는 그렇진 않을 것인데 호텔로 가는 것인지, 이미 인근에 충분히  수요가 있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지금은 친척도 딸기농사를 하지 않아서 복잡한 과정은 모르겠다만 그래도 확실한 것은 다른 과일과 다르게 산지에서 직접 사는 것과 맛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건 흡사 같은 모습을 한 다른 무엇인 것 같다


어머님은 여전히 고령에 계시며 근 50년 가까이 사신다. 그렇지만 어머니도 진짜 딸기를 살 때는 마트에 가지 않고 직접 하우스 단지로 가신다


고령 인근 도로를 나가면 컨테이너 박스가 국도에 쭈욱 설치되어 있다. 단언컨대 여기서 사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사도 비싸고, 구하기 쉽지 않은 딸기가 멀리 나갈 수 없는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일까


새해를 맞이해서 난 어머니를 만났다.

나는 운전을 못하는 관계로 어머니 차를 타고 딸기밭으로 나왔다. 귀한 손님이 오면 고령 사람들은 딸기를 사러 나온다

인근이라면 아무 곳에 들어가도 된다

어머니도 제일 주차하기 편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렇게나 맛있을까 못 믿으시겠죠? 걱정 마세요. 들어가면 빨간 대야에 조금 못생긴 딸기들이 수북이 담겨있을 겁니다. 드셔보십시오. 자신감. 이게 딸기다. 사리곰탕만 먹던 사람이 처음 진한 곰탕집을 간 것과 같을 것이다.)


"사장님 요즘 한 다라이(대야 일본식 표현) 얼마쯤 합니까."

어머니는 유리로 된 문을 밀면서 물었


"첫물이라 아직 비쌉데이."

한창 딸기를 담으시며 사장님이 답했다.


"상관없어요. 우리 아들내미 오랜만에 왔는데

하나 먹여야죠."

"그렇구먼요. 그러면 삼만 오천에 특별히 맛난 걸로 골라드릴예."

아주머님은 나를 한번 쓱 보더니 조금 보태 작은 복숭아 같은 딸기를 손에 쥐었다.


"아이고 첫물은 비싸긴 비싸네요. 그래도 2팩 주세요."

어머니와 나는 딸기를 조심스럽게 담아 나왔다.


차에 탈 때 난 못내 아쉬워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 죄송한데 다시 들어가서 한 팩만 더 사가도 될까요?"

"왜? 저거면 배 터지게 먹는데?"

"아니요. 분홍이 좀 가져다 줄려고요."


어머니는 이해한다는 눈치였지만 한 말씀

하셨다.

"저걸 어떻게 버스로 부산까지 가지고 갈려고.

대야를 가만히 안고 가야 하는데 힘들다. 아니면 통에 담으면 다 물러져서 못 먹는데?"


난 결심 한 장군처럼 답했다.

"그냥 살게요. 제가 마트 가서 냉온가방이랑 용기, 뽁뽁이 사서 담아서 들고 갈게요. 분홍이 도 딸기 엄청 좋아하는데 맛 보여주고 싶어요".


난 그렇게  다시 들어가서 딸기를 사들고 와 택배비보다 비싼 포장을 정성껏 했다.


사랑은 이런 것이구나. 내가 먹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서 돈도 , 노력도, 정성도 계산하지 않는 것이구나.

그렇게 버스와 지하철에서 3시간 반을 달걀 품듯 딸기를 안고 오며 생각했다.

사랑은 고령 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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