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이다. 기분이 좋다. 힘든 한 주를 보내고 쉬는 것이기에 더 특별함이 있다. 인간은 이 하루의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평소보다 많은 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원체 이른 시간에 자는 습관이 있어서 아무리 많이 자도 8시간이 넘지 않았다.
뭘 하지. 독서모임도 없는 날이면 만날 사람도 거의 전무하다. 나는 침대 위에서 꼼지락꼼지락 하다가 결국 일어났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해운대 산책을 간다.
운동복에 검은색 숏패딩을 입고 달릴 때 흔들리지 않게 가슴에서 버클을 채울 수 있는 조그만 백팩을 멨다. 블루투스 이어폰과 뜨거운 정수물에 커피를 타고 뚜껑을 꽉 닫아 챙기고 나갔다.
겨울의 해운대 바닷가는 생각보다 한산하다. 여름의 수많았던 인파는 지금은 어떤 육지에서 흐르고 있을까 싶다.
건강을 생각해서 달리기도 하지만 부산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침 햇살에 일렁이는 잔물결들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혈액이 머리에 더 잘 도는 느낌이 든다. 글쓰기에 관한 생각들이 잘 엮인 그물처럼 잘 떠오른다.
글쓰기를 생각하자 불현듯 어머니와의 통화가 생각났다.
"효롱아 뭐 하고 있노."
"네. 어머니 글 좀 적고 있어요."
"글? 또 무슨 글을 적고 있는데 그거 돈이 되나?"
"아니요. 지금은 그냥 연습하는 거라서 재미로 하고 있는 거예요."
"재미? 휴우우"
어머니는 폐활량도 좋으신지 긴 한숨을 내쉰다.
"효롱아. 지금 그런 글을 쓸 때가? 지금 중요한 시기란 것은 알재? 7급 시험을 보던지, 다른 자격증 공부를 하던지 그런 걸 해야지. 글을 왜 적고 있나."
이런 식의 통화가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그게 현실적으로는 더 나은 삶의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나이를 먹어보니 의식주 걱정만 해결된다면 굳이 그렇게 나를 깎아가며 무엇인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걷던 길에 바다가 보이는 나무 벤치가 있어 앉았다. 백팩 지퍼를 열어 녹색 보온 텀블러를 꺼냈다. 잘 닫힌 용기를 열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해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생각했다.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글을 적고 있지? 사실 예전처럼 자기 계발서를 이어서 적는 게 나은 선택을 수 있다. 하지만 난 실용서적보다 문학을 하고 싶다. 법학과를 나오고 작법 수업 한번 들어보지 못한 터라 독학하며 글을 쓰고 있다.
알고 있다. 나의 이런 생각은 땅보다 하늘에 가깝다. 현실보다는 꿈에 가까운 것이라는 말이다.
집에 들어와서 밤이 되자, 여전히 습관처럼 글을 적다 펜을 놓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말씀이 작은 손가락이 되어 잉크 구멍을 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낮은 천장에서 떨며 빛나는 형광등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글쓰기도 끝을 내야 하나?
창밖을 본다. 보이지 않는 별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밤은 보내고 일하다 보니 벌써 다음 주에 독서모임이 있다. 이것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쓰던 글들을 멈추고 허겁지겁 모임 책을 읽었다. 오픈톡을 열어 이번 모임 참석자를 보니 반초 님이 있었다. 이번에는 나오시려나. 원래는 자주 나오는 운영진 멤버인데 최근 주식과 코인이 급락하고 나서 참석을
안 했던 것이다. 일들도 수습하랴. 마음도 정리하랴. 바쁠 것이 틀림이 없다.
오늘은 내가 좀 더 일찍 카페에 왔다. 토요일 저녁이지만 언덕에 있고 상권과 거리가 멀어 한산했다. 나는 옷을 벗고 가방을 적당한 곳에 놓았다. 커피를 시키고 앉으려는 찰나 분홍님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추위를 많이 탄다는 분홍님은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래도 충분히 손에는 분홍색 전자 손난로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따뜻한 유자차를 주문하고 나에게 왔다.
"분홍님 오늘도 날이 많이 춥죠?"
"12월부터 춥더니 새해에는 더 춥네요."
그녀도 코트를 조심스럽게 벗으면 말했다.
"오늘도 모임은 4명인가요? 둥둥이님은 요즘 고민이 많나 봐요. 이번에도 빠지시네요." 나는 참석명단이 적힌 종이를 보며 말했다.
"둥둥이님은 요즘 고민이 많나 봐요. 그래도 우리 모임 유일한 20대잖아요." 분홍이 말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더니 그 일 때문이겠죠."
나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독서모임 사람들이 다들 일이 있네요. 모임 참석은 눌러져 있었는데 1 퍼센트님도 어젯밤부터 답이 없더라고요. 뭐 공부한다고 못 본 것이겠죠? 그보다 반초 님도 괜찮은지 걱정 많이 되는데 오늘 오시니까 한번 잘 봐야겠어요." 그녀는 가방을 정리하면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안 그래도 걱정은 되는데 물어볼 수도 없더라고요. 반초 님은 투자를 많이 하셔서 작년에 안 좋았겠죠? 최근에 코인에 많이 돈을 넣으신 것 같던데."
"그러게요. 제가 마지막에 살짝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최소 억은 훌쩍 넘는 것 같던데."
분홍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둥둥이님은 오늘도 빠지고 1 퍼센트님과 반초 님이 오시기로 했지만 저번 달에 보지 못한 반초 님이 괜찮은지 걱정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