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신이 될 뻔 한 남자

#5. 우리 동네 수상한 독서모임이 있다

by 효롱이

반초님은 편해 보이는 펑퍼짐한 회색 바지를 입고, 커피를 주문하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은근히 반초 님의 얼굴빛을 살폈는데, 확실히 살은 좀 빠졌지만 여느 때처럼 밝은 얼굴이었다.


"반초님 오래간만이에요. 저번 달에는 모임에서 못 봐서 걱정했어요."

나는 약간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반초님은 내 옆자리로 와서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런가요? 제가 일이 좀 있었죠. 투자하는 게 조금 꼬였다고 봐야죠."


"안 그래도 코인이 요즘 많이 안 좋다는데 괜찮으세요?" 나는 물었다.

"저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걱정 마세요. 코인은 안 건강하지만 저는 건강하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반초 님은 누가 본다면 오히려 투자성공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밝았다.


원래 유쾌한 반초님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멘탈관리법은 남달라 보여 배우고 싶어서, 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저도 며칠 힘들었는데, 비법의 방법을 쓰니 답이 딱 나오더군요. 그 후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는 엄지를 척 올리며 말했다. 그가 앉은 뒤로 켜진 조명이 비치면서 산 정상에서 취하는 폼 같았다.


"오늘도 만병통치약 비법서를 들고 왔는데 보실래요?" 그는 갈색 가방을 뒤지더니 책 한 권으로 꺼냈다. 책이 눕혀진 방향이 내가 앉은자리에서 잘 보이지 않아 제목까지는 보이진 않았다.


"이게 바로 투자의 신을 만들어 주는 책입니다."

그는 내가 제목을 보려고 고개를 빼는 것을 보더니 책을 높이 들어 잘 보이도록 해주었다.


"도덕경인가요? 노자?"

"네 맞습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읽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역시 좋아지더라고요."


"그러면 한 문장만 읽어주세요." 분홍님이 말했다.

"알았어요. 방장님이 부탁하시니까 제가 잘 안 해 주는데 특별히 읽어드릴게요."

그는 마이크 테스트라도 하듯 흠흠 하며 헛기침을 하고 한 문장을 읽었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

반초님은 말하고 한번 우리의 눈치를 살피더니 한 말씀을 덧붙였다.


"전 그래서 현재를 살기로 했습니다. 워렛버핏도 말하는데 사실 투자는 기다림입니다. 이제 곧 괜찮아질 겁니다. 그게 빨리 오지 않는다 해도 평안하게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투자자겠죠.

아마 노자님이 주식을 했으면 대박 나셨을 겁니다."


나는 그의 말에 엄지를 세우며 말했다.

"맞네요. 평안한 기다림이 투자자의 덕목이라면,

노자님은 투자의 신이 되셨겠어요."


분홍님은 의미 없는 이야기라는 듯 말을 끊었다.

"이제는 시간이 다 되었네요. 모임을 시작해야겠어요. 그것보다 이상하네요. 왜 1 퍼센트님이 오시지 않으시죠. 늦는다면 말씀이라도 하실 텐데. 연락되시는 분 아무도 안 계시죠?"


나와 반초님은 서로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할 수 없죠. 공부에 집중해서 그렇겠죠. 시간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까요. 효롱님 그럼 발제 진행 부탁드릴게요."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 모임을 진행했다.

여느 때처럼 우리 해운대 독서살롱 모임은 격렬한 토론보다는 책에서 캐낸 생각의 달큼한 열매를 나눠먹는 것처럼 평안하게 진행되었다.


모임이 끝나는 시간이 되자마자 분홍님은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자서 피곤하다며 집으로 바로 갔다.

우리 모임은 끝나면 대부분은 바로 각자 집으로 헤어지지만, 분홍을 보내고 난 후, 반초님과 나는 카페에 머물러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시 반초님 1퍼센트님 주소 알 수 있을까요?"

"그렇죠? 효롱님도 좀 신경 쓰이시죠?"

"네 끝날 때까지 연락이 없을 분이 아닌데."

"제가 예전에 차 한번 태워준 적이 있어서 대충 기억은 합니다. 주소도 잘 찾아보면 제게 있을 겁니다. 한번 같이 가볼까요?"


반초 님의 차를 타고 내려왔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인지 제법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우리는 근처 안전한 곳에 주차를 하고 나서 집을 찾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저기인가 봅니다." 반초님은 손가락으로 낡은 건물을 가리켰다.


건물은 높은 언덕 중에서도 차가 주차하기도 힘든 가파른 곳에 있었다. 초록색 간판에 굵고 하얀 옛글씨체로 상호가 적혀 있다. 맞추어보니 반초님이 기록해 두었던 곳이 맞다.

건물은 옛 볏짚 같은 누런 색깔이었고 벗겨진 검은 문 옆에는 녹슨 진한 녹색 자판기가 있었는데 전부 품절이라는 빨간 불빛이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찬찬히 문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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