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미래 Oct 30. 2023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목격자(4)

제 주인님을 도와주세요! (brunch.co.kr)


저랑 잠깐 얘기 좀 합시다 (brunch.co.kr)


약속을 지켜주세요 (brunch.co.kr)


-마지막 편이 전 편에서 이어집니다.




멍멍멍!


"경찰아저씨! 그래도 그냥 넘어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그분들은 제 주인님의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근데 어찌 그냥 넘어갑니까? 

저랑 제 주인님은 그분들께 꼭 보답하고 싶다고요!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겁니다.

정 보답을 하고 싶으면 아무 일 없던 듯 그냥 지나가는 것이 그분들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보답이겠죠?

이제 사건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코로나로 바깥 생활을 하지 못한 채 몇 해가 흘렀다. 그 아이가 훌쩍 커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처음 설렘 속에 학교를 다니던 때도 잠시, 아이는 학교에 적응하고 나서부터 날이 갈수록 점점 늦잠 자는 날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침부터 아이를 재촉하고 빨리빨리를 외친다. 

1분 1초를 다투는 아침시간 최대한 학교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무심코 그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갔다.

8시 35분 전후, 그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다. 세월이 약이 되어주었다. 

몇 년 동안 모녀를 괴롭혔던 그 횡단보도의 충격도 일상의 행복을 누리며 서서히 잊혀갔다. 


신호 대기 중에 얼핏 뒤를 돌아보니 횡단보도 옆단지 사잇길에서 할머니 한 분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이쪽으로 걸어오신다. 

아이 등교가 늦어지면서부터 가끔씩 마주쳤는데 최근 들어서 자주 눈에 뜨이는 강아지다. 어쩌다 한 번씩 그 모녀만 보면 기운이 솟아나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반겨주는 강아지가 왠지 낯설지 않다. 


아이가 사는 아파트 옆동에는 덩치가 크고 사납게 생긴 개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 다들 그 개를 집에서 어찌 키우는지 의심의 눈초리다. 오래전 본인에게 무섭게 달려드는 그 개를 보고 트라우마 생긴 아이는 종종 강아지를 무서워했다. 아직도 휴일 아침이면 가끔씩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서럽게 우는 그 큰 개가 짖는 소리에 온 식구가 깜짝깜짝 놀란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초등학생 딸아이가 이제는 제법 컸다고 그나마 크기가 아담한 강아지는 다행히 가까이와도 엄마뒤로 숨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저 가만히 서있는 걸 보니 강아지가 예전처럼 무섭지 않은가 보다. 그만큼 아이도 내면이 성장하고 있다. 마음이 그전보다 단단해진 모양이다. 대신 아무도 모르게 아무 말 없이 엄마손을 꼭 붙잡는다. 엄마도 변함없이 아이 손을 꼭 잡고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시선을 움직인다. 녹색불이 켜지는 것을 예의주시한다. 양쪽의 차들이 멈춘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함께 횡단보도를 건넌다.

몇 시간 후 우리는 다시 이 횡단보도를 또다시 건널 거라고 말없이 약속을 한 채 잠시 헤어짐의 시간을 갖는다. 

" 잘 다녀와! 이따가 보자!"


아이는 가는 길에 친구들을 만났다. 함께 재잘재잘 얘기 나누면서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집에 되돌아오는 길에 애엄마는 아까 만난 그 할머니를 옆단지 안쪽 길에서 다시 만났다.

갑자기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힘들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뒤로 갑자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얘기하셨다. 그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 확신에 차있는 목소리였다. 그 애엄마는 귀가 밝은 여자였다. 


예전에 이 근처에서 딸이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 뒤로 딸이 강아지 산책을 시키지 않으려고 해서 자기가 대신 나온다면서 몇 년째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라며 묻지도 않은 말을 내뱉으셨다. 하루라도 산책을 안 하면 현관입구에서 발버둥 치는 강아지를 본인까지 모른 척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애엄마는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요되지 않은 척 대답의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것도 모른 척 차분하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억 속에 잊혔던 몇 년 적 사고의 장면을 목격한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때도 그냥 지나친 경험을 떠올리며 최대한 침착하게 이번에도 모른척했다. 


"강아지가 자꾸 단지 바깥쪽 횡단보도로만 가려고 발길을 돌려서 어느 순간 우리 딸이 강아지를 산책을 포기했어. 딸이 다시는 이 쪽으로 나오기 싫다 했거든! 

근데 어쩌겠어? 강아지가 이리도 나오고 싶어 하는데 나라도 나와야지. 

걷는 게 힘들 긴 하지만 이 녀석이 없었더라면 내가 우리 딸까지 잃을 뻔했으니까. 

이 녀석이 우리 모녀를 살렸거든"




멍멍멍!!


"저는 당신을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당신이 누구인지 저는 이미 알고 있어요! 

저는 그날 이후로 단 한순간도 당신을 잊지 않고 살아왔어요. 

단지 저는 경찰 아저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저 역시 당신을 모른 척했을 뿐이에요. 저 역시 그동안 모른 척 잘했죠? 저는 그 은혜를 갚고 싶었어요.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이렇게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걱정 말아요. 앞으로도 제가 당신을 지켜드릴게요"




그 뒤로도 몇 년 간 그 모녀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게 행복이다. 일상의 행복.

그 행복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강아지도, 강아지 주인인 그 딸과 할머니뿐만 아니라 그 애엄마와 딸도 같은 마음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테다. 






- 부족한 저의 초단편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속 꾸준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