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부고(訃告)를 전하는 것도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진화했다. 이전에 부고는 죽음과 관련된 것이라 터부시 했고 부고장도 인편으로 그것도 대문 안이 아닌 대문 밖에서 일일이 전해주었다.
이제는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도 결혼식 청첩장처럼 화려해졌다. 카톡에 부고를 전하면서 돌아가신 분의 얼굴과 상주와 장례식장 위치 및 교통안내, 부의금 및 근조화환을 보내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오늘도 직장에 출근해서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부팅하고 윈도 비번을 입력했다. 얼마 후 컴퓨터 화면이 떠올라 업무망을 클릭하고 공인인증서에 비번을 입력했다
그러자 업무망 화면이 열리고 화면 우측에 직원의 인사나 경조사 소식을 알리는 게시판이 떴다. 경조사 게시판에는 현재 근무하는 직원이나 퇴직한 직원의 애경사 소식이 게재된다. 애경사 소식은 직원이면 누구나 언제든 올릴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관심사는 승진이나 업무보다 직장의 경조사 소식을 살펴보는 일이다. 오늘은 오래전에 함께 근무했던 분의 본인 부고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그분과 함께 근무하던 직원에게 전화로 돌아가신 분의 소식을 물어보니 간경화로 고생하다 암으로 발전해서 치료를 받다 암이 전이되면서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분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옥천에서 양봉하면서 자연을 벗 삼아 지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전화기를 내려놓자 이전에 함께 근무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분은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운동을 하고 선식을 즐겨 먹었다.
평소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등 몸 관리에 꽤 신경을 쓰며 살던 분이었는데 부고 소식을 접하자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졌다.
부고 내용을 보니 일요일에 돌아가셨고 부고는 월요일에 게시판에 올렸다. 다른 직원을 통해 부의금을 보낼까 하다 자제분의 계좌번호가 적혀 있어 퇴근길에 계좌로 송금하는 것으로 조의를 대신했다.
그간 잘 알고 지내던 분이 돌아가시면 의당 조문 가서 유가족을 위로해 주고 슬픔을 나누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의 가족을 잘 알지 못하고, 장례식장도 조문 가기에 너무 멀어서 마음으로 슬픔을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람의 간은 한번 잘못되면 치유하기가 어렵다. 특히 B형 간염에 걸린 사람이 간 경화에 걸려 간암으로 발전하는 것은 천형이란 생각이 든다.
B형 간염에 걸리면 먹는 음식이나 건강에 꽤 신경을 쓰고 살아도 간경화로 진행되면 그리 오래 살지를 못한다. 장모님도 B형 간염이 간경화로 진행되어 매년 입원까지 하면서 치료를 받다가 갑자기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간은 담배나 술과 관련이 있다지만 돌아가신 분이나 장모님은 담배와 술과는 무관한 사람이다. 오늘날 의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지만 암이나 B형 간염과 같은 병에는 속수무책이다.
돌아가신 분과는 근 이십여 년 전에 함께 일 년 정도 근무했다.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인격적으로 좋은 분으로 기억되어 남아 있다.
공직의 업무는 민원이나 감사 등에 대비하여 예산이나 문제 발생이 덜한 방향으로 처리해야 한다. 정책이나 예산 집행은 결과에 대한 감사를 받기 때문에 사전에 방향을 정하지 않고 처리하면 나중에 감사에서 지적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분과 함께 근무하던 시절 내가 업무처리에 망설이자 그분은 나중에 감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이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추진하라던 말이 생각난다.
대개 직장의 윗선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업무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당시 나는 부처 인사교류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던 시기라 직장의 분위기나 사람도 잘 알고 있지 못하던 때다. 그런 시기에 그분을 통해서 업무나 인간적인 관계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퇴근해서 집에 와서 아내에게 부고 소식을 알려주자 아내도 점심시간에 운동하고 식사하던 분 아니냐며 기억하고 있었다.
세월이 이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아내까지 기억하고 있는 분이다. 직장에 근무하며 느끼는 것은 직장에서 좋은 인연으로 만난 사람도 직장을 떠나면 서로의 사정과 형편 때문에 만나기가 힘들고 어려워진다.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도 세월 따라 바뀌고 순환하며 흘러간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신 그분은 한때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지만 이제는 세상 어디를 가도 만날 수가 없다.
삶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늘따라 새삼 죽음이란 단어가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을 파고든다. 아마도 그분은 아주 먼 곳으로 긴 여정을 떠났을 것이다.
부디 그곳에서 아픈 고통을 내려놓고 평안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먼 훗날 언젠가 다시 만날 때는 웃으면서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추억의 이야기나 나누고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