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의 37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마치자 잣고개 문안산 방공포대에 근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방공 포대 본부에 첫 출근하는 날 인사 주임 상사가 나를 호출했다.
그리고는 사회에서 근무한 곳을 물었다. 대학 가기 전 읍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자 포대 기간병과 함께 행정반에서 시설 선임하사와 일하라고 한다.
당시 방공포대에는 3개 소대에 100명 정도의 방위병이 복무했다. 진천의 각 읍면에서 차출되어 출퇴근하는데 초중고 선후배나 친구들이었다.
군대 내무반의 반장처럼 방위병도 기수 선임이 견장을 찬다. 견장을 차면 동료와 후배들을 지휘하고 통솔해야 한다. 견장을 찬 선배는 세상을 호령하듯이 호기를 부리고 후임을 괴롭혔다.
평소 점잖은 사람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말과 행동이 달라지듯이 견장을 차는 방위병도 말과 행동이 변한다. 군대와 같이 종종 단체로 견장 찬 선임에게 체벌과 매를 맞곤 했다.
방공포대에는 미군이 쓰던 BOQ(장교 숙소)라는 빈 창고가 있다. 본부포대 앞 테니스장에서 퇴근 점호가 끝나면 선임은 종종 장교 숙소로 후배들을 집합시켰다.
그리고는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선임 기수가 빳다로 아래 기수를 때리고 다음 기수는 다시 아래 기수를 자신이 맞은 것에 배를 더해 때렸다.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이 매를 때리는 방식과 같지만 맞는 매의 숫자만 달랐다. 매를 맞는 이유는 단순했다. 군기가 빠졌다거나 선배를 만나도 인사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나는 행정반에 같이 근무하는 선임하사 덕분에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방공포대를 지나가다 포대를 내려다보고는 위장이 잘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며 위장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말이 떨어지자 이튿날 군사령관이 포대를 방문해서 포대 위장 작업을 지시했다. 방공포대 현역과 방위병, 37사단에서 병력을 파견받아 근 6개월에 걸쳐 위장 작업에 투입되었다.
문안산은 6.25 전쟁 이후 미군이 산 정상을 깎아 레이더 기지를 조성해서 거칠고 메마른 곳이다. 그런 곳에 나무와 풀을 심어 위장하는 작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다.
방공포대 기간병을 제외한 나머지 군인과 증평 37사단에서 파견된 군인과 방위병은 문안산을 위장 작업을 위해 일요일도 반납하고 동원되었다.
포대 위장 작업은 팀별로 나누어 작업했다. 한 팀은 모래를 구하러 트럭을 타고 진천 시냇가로 나가고, 다른 팀은 증평 37사단에 가서 나무를 실러 갔다. 방공포대는 본부소대, 레이더 소대, 발사 소대별로 각 소대 내무반과 기름 탱크, 시설창고 등 건물에 페인트 작업은 행정반 시설팀에서 맡았다.
위장 작업은 약 6개월에 걸쳐했다. 포대 위장 작업을 마치고 점검하러 온 군사령관은 지프차를 타고 방공포대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부대원과 파견된 군인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방공포대에 근무할 때 다른 부대와 마찬가지로 현역병이 출퇴근하는 방위병을 종종 괴롭혔다. 문안산 레이더 소대에 올라가 위장 작업을 마치고 하산할 때면 위병소를 지키는 현역이 괴롭혔다.
특히 위병은 내무반에서 상급자에게 체벌을 받거나 매를 맞은 날이면 그에 대한 분풀이를 방위병에게 전가했다. 자신이 받은 체벌을 보상받고 싶어서 퇴근하는 방위병을 괴롭힌 것이다.
군대는 계급이란 질서 때문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다. 자신의 약점과 허물을 남에게 전가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보상심리가 강한 사회다.
당시 방위병 복무기간은 일요일과 공휴일을 빼고 정확히 365일이다. 1년 하고 2개월 정도 복무하면 방위 소집이 해제된다. 군인은 복무기간이 끝나면 만기제대고, 방위는 소집을 해제한다.
문안산에서 힘든 사계절을 보내고 소집 해제를 명 받은 것이다. 방위병 소집해제를 신고하러 훈련을 받던 증평 37사단 연대사무실을 찾아갔다.
진천에서 증평 가는 버스를 타고 증평훈련소 앞에서 내려 위병소를 지나가는데 위병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연대사무실에 방위병 소집해제 신고하러 왔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위병은 “그간 고생했다며 예비군이네요?”라며 웃음을 건넸다. 위병소를 지나 37사단 연대사무실을 걸어가며 연병장을 바라보자 지난해 훈련받던 훈련병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나는 그나마 방위로 군대를 대신해서 군대라는 막막한 공간보다 고향에서 어머님이 해주시는 따뜻한 밥을 먹고 복무했다. 지금도 문안산에는 방공포대가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과 고향에 갈 때마다 문안산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해준다. “아빠가 저 부대에서 청춘의 한 시절을 보냈노라고, 그것도 방위병으로”.
그러면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아빠! 방위도 군인이야”라며 낄낄거리며 웃는다. 어찌하랴? 그것도 내게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군대에 복무한 영광스러운 전선의 길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