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을 향해

by 이상역

나는 중학교 때까지 키가 작아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그리고 고교에 입학하고 상급 학년에 올라갈수록 키가 쑥쑥 자라더니 졸업반 때는 학급에서 중간 이상 자리에 앉을 정도로 커졌다.


고교 시절은 루소의 말처럼 질풍노도의 시기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슴에 품을 수 있고,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순서 없이 분출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철학책을 읽으면 삶의 영원한 지침서가 되고, 문학책을 읽으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바탕이 된다.


그런 중요한 시기에 나는 공부보다 흙을 사랑하는 철학을 배웠다. 배움에는 시기가 있듯이 그 시기를 놓치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삶에 미치는 영향도 적을 수밖에 없다.


고교 3학년 때 대학 진학에 대한 꿈을 안고 진천 읍내에서 하숙을 했다. 아버지가 잘 아는 사업을 하던 아저씨네 집에서 하숙을 했는데 식사는 그 집에서 일하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가 챙겨주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해주는 밥이나 반찬은 별로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가끔 설익은 밥에 머리카락이 들어간 반찬이 나오곤 했다. 친구와 같이 하숙했는데 주인아주머니에게 반찬과 밥이 엉망이라고 하면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화만 낼뿐 개선이 되지를 않았다.


그런 하숙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농고에는 대학 진학반이 없다. 대학 진학을 꿈꾸던 친구 몇 명이 모여 수업이 끝난 후 교실에 남아 별도로 공부한 것이 전부다.


그 시절 총각이던 수학 선생님에게 진학에 대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선생님은 공부하는 친구들을 위해 수학을 가르쳐 주고 음료수 등을 사다 주시곤 했는데 학기 도중에 영장이 나와 군대에 입대했다.


농고에서 대학 진학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란 생각이 든다. 교과목 수업 대부분을 농업 관련 과목을 배우고, 영어와 수학과 국어 등 인문 과목은 수업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업계 출신은 동일계열을 지원하면 다른 농고에 다니는 학생과 경쟁을 해서 의외로 동일계열 진학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문제는 동일계열 진학은 재학생에게만 주어지고 졸업 후 재수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고교 졸업반에 올라가자 대학에 진학한 선배들이 학교를 찾아와 후배들에게 대학 진학에 대한 조언이나 격려해 주는 말을 들으면서 그들을 몹시 부러워했다. 나도 대학에 진학해서 언젠가 모교를 찾아와 후배들에게 진로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고 충언을 하게 될까 하는 꿈을 꾸곤 했다.


내가 대학 진학을 꿈꾼 것은 고교 입학해서다. 대학에 진학해서 무엇을 전공한다거나 그 무엇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저 대학 진학이란 막연한 꿈만 꾸었다.


그때는 당장 손에 움켜쥐는 현실보다, 나중에 무엇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다녔다. 무슨 연유로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의지와 꿈을 갖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도 다르고 인문 과목에 대한 배움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에서 진학에 대한 부푼 꿈을 꾼 철부지가 아니었을까.


농고는 이름에 걸맞게 과수원과 밭이 학교 주변에 있어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교실에 친구들과 남아 공부하다 포도나 사과, 배나 복숭아 등을 몰래 따 먹으며 허기진 배도 채웠다.


친구들끼리 영어나 수학이나 국어 등 궁금한 과목은 서로 묻고 배워가며 공부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학교에서 공부하다 가을에 청주로 가서 대학 예비고사를 보았다.


대학 예비고사는 300점 만점에 평균 60% 점수만 맞으면 국립대 동일계열인 농대에 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공부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는지 국립대 동일계열에 진학할 수 있는 점수가 나오지를 않았다.


국립대에 갈 성적이 되지 않아 예산농업전문대학에 응시원서를 제출했으나 그곳도 불합격되었다. 학교 교실에 남아 공부하던 친구 중 몇 명은 국립대학에 진학하고 몇 명은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졸업식은 교무실 앞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는 화단에 올라가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학교를 떠나는 섭섭함을 달랬다.


그 시절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 대부분은 돌아가셨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인데 찾아뵙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것 같아 마음만 서글프고 아프다.


고교에서 보낸 3년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학교에 남아 공부하던 친구들의 얼굴이다. 이제는 성인이 되었지만, 머릿속에는 아직도 그 시절의 긴 그림자가 잔잔하게 여울져 파도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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