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살이

by 이상역

지난해 가을에 결혼한 딸이 서울에 어렵게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에서 산 지 일 년이 지나고 내년이면 계약기간이 만료된다.


그런데 집주인이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며 계약기간 만료 전에 위로금을 조금 줄 테니 이사를 갈 수 있느냐고 연락을 해왔단다. 아파트가 오래되어 재건축해야 하는데 의무거주 기간을 채우기 위해 부득이 계약기간 만료 전에 이사 갈 수 없느냐는 것이다.


처음 주인에게 연락이 왔을 때는 대응하지 않다가 위로금을 좀 올려준다고 해서 어차피 몇 개월 후면 계약이 끝나고 전세를 얻어 나가야 하니 딸에게 이사 갈 집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렇게 딸네가 이사 갈 곳을 찾고 있는데 가락동에 아파트 전세가 좀 싸게 나온 물건이 있다고 해서 가려고 준비하는데 중개사무소에서 다른 사람이 이미 계약을 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비슷한 조건의 다른 아파트가 있는데 그 집을 보려면 시간에 맞추어 찾아오라는 연락을 해왔다. 부랴부랴 딸에게 시간에 맞추어 그곳으로 오라 하고 나와 아내는 차를 운전해서 아파트를 찾아갔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아파트가 오래돼서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세가 나온 아파트 단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딸과 함께 중개사무소 직원도 도착했다.


넷이서 아파트에 들어가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오래된 아파트지만 구조와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아파트를 둘러보고 나와서 딸에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전세 조건이나 아파트 내부도 괜찮다고 한다.


중개사무소에서는 신혼부부가 입주한다고 하자 우리한테만 전세를 주겠다며 선심을 쓰듯 말한다. 아파트는 임대사업자가 전세를 놓는 것이어서 전세보증금이 싼 편이라고 한다.


계약기간은 2년이고 1년마다 5%의 보증금을 올려주는 조건이다. 주변 아파트의 같은 평형대 보다 보증금은 낮은 편인데 임대사업자는 연 5% 이상 보증금을 올릴 수가 없어 그런 것 같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는 층간소음이 심하고 복도식이라 시끄러워서 살기에 좋지 않다고 한다. 아파트가 복도식에 방 2개에 거실 겸 싱크대가 있는데 공간의 여유가 별로 없지만 오늘 본 아파트는 방 3개에 거실과 주방이 분리되어 있어 지금 사는 곳보다 좀 넓은 편이다.


중개사는 딸에게 전세를 주기 위해 다른 대기자는 모두 물리쳤다고 한다. 보증금이 낮다 보니 계약을 하려는 사람이 몰려드는 것 같다.


딸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계약금 일부를 송금해 주고 내주 월요일에 사위가 보고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요즈음은 아파트는 등기부상 하자만 없으면 살펴보지 않고도 계약금을 송금한다.


세월은 코로나로 어수선한데 전세 집을 구하는 일로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셈이다. 전세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약금을 일부 손에 들고 다녀야 한다.


단독주택은 살펴볼 것이 많지만 아파트는 난방과 상하수도와 벽지 상태와 누수만 없으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딸에게 내가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물려주는 것 같아 약간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딸이 결혼할 때 집 한 채 사줄 형편이 되지 못해 작은 아파트 전세를 구하는데 조금 보태주었다. 돈이라도 많으면 아파트를 사주겠는데 돈이 없어 딸이 고생하는 것을 바라보자니 마음이 쓸쓸하다.


요즈음 젊은 신혼부부가 결혼해서 서울에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은 꿈이 되어버렸다. 아파트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 은행 대출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로 변했다.


정부는 주택담보와 신용대출마저 꽁꽁 묶어 놓았다. 현금이 많은 사람은 돈으로 아파트를 사지만, 현금이 없는 사람은 아파트도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세상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집이 없는 서민에게 집을 사는 길을 막아 버렸다. 내가 겪어온 삶의 방식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반복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서울에서 사는 누구나 가까운 장래에 자신의 집을 소유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젊은 세대에게는 남의 일이 되고 말았다. 부모에게 한 푼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신혼부부에게 서울은 욕망의 도시이자 난쟁이가 쏘아 올린 도시가 되어 버렸다.


직장에 다니면서 집 한 채 소유하지 못하면 사서 고생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서울은 신규 아파트의 전용면적이 11평 정도면 전세 값이 무려 7억이다.


젊은 부부가 맞벌이해서 7억을 모으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이상은 모아야 한다. 젊은 세대가 아파트만 선호하니 전세 난민이 따로 없는 시대다.


딸네가 지금 사는 16평짜리 낡은 아파트도 전세가 3억이다. 서울이 정말로 살기 좋은 도시일까. 나는 살만한 도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먹고 살아갈 일자리와 생활 편익 시설이 많다. 반대로 지방의 중소도시는 취업할 곳도 없고 생활 편익시설과 문화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요즈음 아파트 전세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데 딸네가 아파트를 계약해서 다행이다. 앞으로 이사 날짜에 맞추어 전세보증금을 받아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건네주고 이사 가면 된다.


딸네가 하루속히 전세 집을 벗어나 자기 집을 소유하고 서울에서 평안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고 전세살이가 아닌 자가 소유로 삶이 바뀌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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